비를 견뎌낸 도시에서 음악이 태어난 방식
맨체스터의 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도시 위에 오래 머문다.
회색의 습기는 공기와 사람의 어깨를 지나
운하의 물 위에 고이고,
거친 붉은 벽돌의 피부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비에 젖을수록 이 도시는 오히려 색을 얻는다.
붉은 벽돌은 더 짙어지고,
정지된 시간처럼 보이던 풍경은 묵직한 숨을 내쉰다.
이곳에서 비는 배경이 아니라 도시가 견뎌온 방식에 가깝다.
이 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맨체스터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맨체스터의 붉은 벽돌은
처음부터 낭만을 위해 쌓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사람을 모으고,
사람을 오래 붙들어 두기 위해 가장 빠르고,
가장 단단한 방식으로 쌓아 올려진 벽이었다.
이 도시의 공장들은
빛보다 효율을 먼저 생각했고,
풍경보다 속도를 우선했다.
높은 천장과 끝없이 이어진 창문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계를 쉬지 않고 돌리기 위한 구조였다.
운하 옆에 늘어선 붉은 벽돌 공장 안에서는
면직물이 짜였고,
기계는 하루 종일 같은 리듬으로 울렸다.
그 굉음 속에서 사람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고,
개인의 감정은 기계의 속도에 맞춰 눌려야 했다.
그러나 산업의 전성기가 지나고 기계가 멈추자,
이 거대한 공간에는 처음으로 정적이 들어왔다.
기계의 리듬이 흐르던 시절 맨체스터의 청년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공장 라인에 몸을 맡기거나,
아니면 이 지루함과 습기를 뚫고
자신들만의 리듬을 만들어내거나.
오랫동안 소음을 견디던 벽들은 비어 있는 공기와 함께
낯선 울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공장이 더 이상 사람을 부르지 않게 되었을 때,
이 붉은 벽돌들은 다른 종류의 소리를
기다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기계가 멈춘 공장은
곧바로 다른 소리로 채워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텅 빈 공간에 남은
잔향 같은 것들이 먼저 떠돌았다.
높은 천장은 아직 무엇을 반사해야 할지 몰랐고,
거친 붉은 벽돌 벽은 오랫동안 들었던 굉음을
쉽게 잊지 못한 듯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적막 속으로 기타 소리가 들어왔다.
정제되지 않은 코드, 조금은 서툰 리듬.
하지만 그 소리는 기계와 달리
속도를 강요하지 않았다.
이 공간은 처음으로
사람의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벽은 울림을 돌려주었고, 천장은 음을 키웠다.
공장은 더 이상 노동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소리를 품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이 도시의 음악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버려진 붉은 벽돌 공간에서
조용히 태어났다.
결핍 위에 쌓인 소리였고,
비를 견디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이었다.
이 도시에서 음악은
꿈이 아니라 숨구멍이었다.
Joy Division,
The Smiths,
Oasis
이들의 특유의 서늘하고 몽환적이고 거칠며 반항적인 질감은
이 환경에서 태어난 소리의 결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훗날의 수많은 맨체스터 밴드들에게
공통의 공기를 남겼을 것이다.
비가 이 도시를 만들었고,
산업이 멈춘 뒤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음악이 어디에 있든
맨체스터의 비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내리고 있다.
맨체스터는 딸이 살고 있는 도시지만,
밴쿠버에 뿌리를 둔 내가 자주 오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도시에 올 때마다
같은 이름의 ‘비’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차이가 궁금해 비를 따라 걷고, 벽돌을 만지고,
공장 안에 남아 있는 침묵까지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모은 조각들 덕분에 나는 이 도시를
고향보다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은 묘한 만족 속에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