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나에게는 두 개의 겨울이 있다. 밴쿠버의 젖은 겨울과 사스카툰의 얼어붙은 겨울.
비행기로 2 시간 걸리는 캐나다 중부의
사스카툰에 일터가 있다.
어쩌다 보니 두 곳을 모두 주거지처럼 살아가는 운명이 되었다.
사스카툰의 겨울은 길고 단단하다. 1월 평균 기온은 낮 영하 10도, 밤 영하 20도.
시베리아 기단이 내려오는 날이면 체감 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
한 번 내린 눈은 녹지 않은 채 겨울 내내 땅 위에 화석처럼 굳어 땅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겨울이 시작되면 이곳에서는 다섯 달쯤 밖에서 뛰지 못한다.
밴쿠버에서 돌아온 뒤 루틴처럼 세운 ‘하루에 한 번 뛰기’를 지키기 위해
시에서 운영하는 레저 센터의 실내 트랙으로 갔다.
트랙은 여덟 개의 라인으로 나뉘어 있었다. 안쪽에서는 사람들이 걷고 있었고,
가장 바깥쪽에는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갔다. 열심히 뛰었다. 나 나름대로, 꽤 성실하게.
그런데 앞쪽에서 어떤 사람이 집게손가락으로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설마 나겠어?’ 한 바퀴를 다시 돌아 그 위치로 왔는데,
또 그 손짓이다. 짜증이 났다.
‘뭐야, 별 사람 다 있네.’
그는 말없이 안내판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내 쪽 라인을 가리켰다.
입구 쪽으로 걸어가 안내판을 읽었다.
8번 라인: Running
7번 라인: Jogging (반대 방향)
내가 뛰던 라인의 이름이 Running.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내가 뛰고 있던 8번 라인에는 다리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
젊고 빠르게 달리는, 어딘가 훈련 중인 몸들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라인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걸.
내가 하고 있던 것은 Running이 아니라 Jogging이었다는 걸.
나는 뛰고 있었지만, 그들이 말하는 ‘달림’의 속도는 아니었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나. 안내문을 잘 읽지 않고, 읽어도 대강 이해한 채
행동해 온 습성. 그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문화가 달라서? 불리하면 문화 탓이다.
한 칸 옆에서 맞춰진 나의 리듬 같은 행동 안에도 정확한 이름과 속도가 있다.
그 차이를 모른 채 나는 내 리듬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자리였을 뿐.
나는 한 칸 옆으로 옮겨 조깅 라인에서 반대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비로소 숨이 가라앉고 속도가 맞물렸다. 내 하루의 무게에 딱 알맞은 리듬이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나는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도
충분히 괜찮다는 걸.
삶에도 트랙이 있다.
속도가 아니라, 서 있어야 할 자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