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도착하기 전, 한 곡의 음악
읽고 싶은 책을
바로 읽지 못하는 시간도
어쩌면 독서의 일부인지 모른다.
책은 종종
읽히기 전에
기다림이라는 장을 먼저 펼친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제목을 빌려와 본다.
<일인칭 단수>.
아직 읽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을 손에 쥐기까지
이토록 시간이 걸리는 건,
마음의 태만이라기보다
태평양을 건너 이곳 캐나다까지
책이 도달해야 하는 물리적 거리 때문이다.
새 책이 나와도
바로 손에 들 수 없고,
책장에 꽂아 두기까지
잠시의 공백이 생긴다.
그 시간을 견디며
제목만 바라보는 나의 현실은,
캐나다의 광활한 풍경 속에 홀로 서 있는
분명한 일인칭 단수다.
이 고독한 일인칭 단수는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미디어로 전해 들은
책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도
조심스레 상상의 날개를 달아본다.
읽지 않은 책 앞에서
먼저 마음이 움직이는 쪽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루키는
유명 작가이기 이전에
자신을 통제하며
예술을 삶으로 끌어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내게 그는 어쩐지 동지 같고,
어쩐지 닮고 싶은 선배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일인칭 단수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
그가 배치해 둔 선율을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내 안의 현(絃)을 먼저 튕겨보려 한다.
거장의 지휘봉이 내려오기 전,
첼로의 낮은 저음으로 먼저 선공을 날리는
연주자의 마음으로 한 곡을 골랐다.
*** 일인칭 단수가 선정한 리듬
Oblivion – Astor Piazzolla
첼로 편, Hauser 연주
첼로는 인간의 음역대에 가장 가까운 악기다.
그래서 이 연주는 음악이라기보다
겨울을 통과하는 한 인간의 호흡처럼 들린다.
사스카툰(Saskatoon)의 긴 겨울처럼
이 곡은 처음부터 아름답지 않다.
눌리고, 버티고,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낮고 거친 선율 속에는
겨울의 고통을 뚫고 나오는
처절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망각’이라는 제목과 달리
이 첼로는 잊기 위해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끝내 숨을 놓지 않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 동토의 땅에서 봄을 기다리는 지금,
이 음악은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남는 방식을
조용히 증명할 뿐이다.
읽지 않은 책 앞에서도,
삶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