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숙인 마음, 뒤로 기대어 쓰는 문장
앞으로 숙인 마음, 뒤로 기대어 쓰는 문장
지금 앉아 있는 의자는
25년 된 리클라이너다.
살 때는
꽤 비싼 값을 치렀다.
하지만 그 뒤로 오랫동안
이 의자는
거실 한쪽에서
장식품처럼 머물러 있었다.
나는 늘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영어 단어를 외우기도 하고,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공부들을
늘 습관처럼 했던 기억이 있다.
돌아보면
무엇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간만큼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앞으로 숙인 자세로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던 것 같다.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던 정답 대신,
이제는 힘을 뺄 때 다가오는 문장들을 기다린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주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문장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이 의자로 돌아온다.
책을 펼치기도 하고,
생각을 모으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른다.
이 의자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어쩌면 물건에도
시절인연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내가 이 의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때가 되어 이 의자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책상과 의자 사이를 오가며
문장을 이어 붙이고 있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나는
조금 더 오래
생각을 비우게 될 것 같다.
비워낸 몸을 의자에 맡길 때
비로소 채워지는 문장들.
25년의 세월을 건너
이 의자가 나를 기다려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쓰임은
만나는 순간이 아니라
알아보는 순간에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