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재정렬한 인류의 역사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의 유엔 지속개발위원회(UNCSD)에서 짤막한 영상이 상영되었다. 3분가량의 영상 끝자락 즈음에 등장한 이 문구는 이제 인류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평범하지만 고도로 압축된 문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인류는 어두운 미래 전망을 놓고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재구성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2000년, 어느 학술회의에서 노벨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Paul Jozef Crutzen)의 분노 어린 외침이 12년 만에 전 세계로 울려 퍼진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 코로나 대유행은 우리가 인류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체감하게 해주었다.
현재 인류세라는 용어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기후위기, 환경파괴, 지속가능한 발전 등 각자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이들 단어 모두 인류와 자연의 상호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진작에 해당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범위와 심도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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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눈여겨 볼 책이 있다. 과학자가 인류의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는 지금의 인류세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서술했다고 서문에 적어놓았다. 덕분에 책은 인류세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함유하고 있다. 인류세라는 명칭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가 왜 지금을 인류세라 불러야 하는지에 관한 이유,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과거의 어떤 원인에서 야기된 결과인지를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책의 시기 구분이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고대, 중세, 근대라는 표현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에 저자는 농경의 시작, 콜럼버스 교환(대서양 무역체제의 성립), 산업혁명 그리고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을 각기 하나의 전환점으로 설정한다. 이들을 설정한 이유는 해당 시기마다 지구에 미치는 인류의 영향력이 대폭 증가했다는 이유에서다. 농경은 인간이 특정 생물 종을 선택하고 교배했다는 측면과 탄소를 배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콜럼버스 교환(지구화 1.0)은 그 여파로 많은 인류가 죽어서 지구 온도를 하강시켰다는 점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를 성립시켰다는 점에서 선정했다. 산업혁명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에너지 혁명은 인류의 삶을 대폭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거대한 가속(지구화 2.0)은 낯선 개념이지만, 1950년대에 인류의 폭증 및 각종 자원의 대량사용이 지구에 대한 압박을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에 선정되었다.
『행성』은 역사의 주체 설정 측면에서도 다른 서적과는 다르다. 기존의 민족국가 또는 국가 중심의 서사는 책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에 저자는 인류라는 하나의 종(species)을 택한다. 기존 역사책에 흔히 등장하는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역사나 주요 정치 위인이 더는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프리츠 하버(Fritz Haber)나 제임스 와트(James Watt) 같은 인물이 서사의 주인공이다.
이런 특별함은 공간 설정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민족국가 경계를 벗어나 유럽, 아시아를 넘어서 지구 전체라는 공간에서 통합된 역사를 저자는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책의 영문 제목과 한글 제목에도 행성(planet)이 포함되었다. 이는 기존에 나왔던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사피엔스』와 비슷한 구조다.
하지만 하라리의 책과 구별되는 특징은 저자의 설명이 인류세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8장이 그런 내용을 좀 더 자세하기 다루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인류세 실무그룹(AWG) 운영에 대한 불만 표출과 함께 지금 지질학계에서 인류세 설정이 필수적이며, 그 지점은 1610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다른 장에서 저자는 한걸음 멀찍이 떨어져서 역사를 조망하지만 8장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해당 부분에서 저자는 기존 인류세 논의에 불만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외에도 『행성』에는 새로운 시각과 전망이 제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10장에 나오는 양과 음의 되먹임으로 인해 인류의 시간적 흐름을 설명한 부분이 그렇다. 몇 번을 읽어봐도 내용이해가 어렵긴 했지만. 해당 부분은 물리학을 활용하여 역사적 흐름을 설명한 부분이라서 흥미로웠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를 요구하는 전망은 11장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 저자는 탄소 포집기술(BECCS)을 제시하면서 과학기술발전이 우리의 구세주일 수도 있다는 전망도 조금 내비친다. 또한, 육체노동의 해방과 기본 소득의 제공이 일과 소비의 연관성을 단절시켜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견해를 내세우기도 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은 필자가 좀 더 밝은 미래를 꿈꾸며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전반적으로 책은 과학사 시각을 택하고 있지만, 인류세라는 현재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시간을 새롭게 재구성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행성』은 낯설기도 하지만 충분히 탐독할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