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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계의 역사: 베스트 팔렌에서 빈까지

주권의 탄생과 유럽 공조

오늘날 국제관계의 정의를 찾아보면, '주권을 가진 국가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말한다. 주권과 국가라는 말이 핵심이다. 그러면 주권과 국가는 무엇을 뜻할까? 영어로 국제관계는 international relation이다. 여기서 인터내셔널은 합성어다. ~의 사이라고 하는 inter 와 nation 의 번역어 국가의 합성어다(nation은 민족으로도 번역된다). 그럼 국가란 뭘까? 흔히 여러가지 정의가 존재하지만 쉽게 말해 국가는 국민과 영토로 이루어진 하나의 정치조직이다. 그리고 그 안에 구성원들이 동의하여 정부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정부를 구성하여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이 주권(sovereignty)이다. 즉 주권은 그 나라의 최고 권력을 뜻한다. 참고로 오늘날의 국가들은 주권을 문서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헌법이다. 그렇기에 국가의 3요소를 흔히 국가, 국민, 주권이라고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이러한 생각이 정착되었던 것일까?


시간을 꽤 거슬러 올라가 1648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648년, 지금의 독일(옛 신성로마제국)에서는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조약이 성사되었다. 베스트팔렌에서 체결된 조약이라 하여 베스트팔렌 조약이라 불리는 조약이 그것이다. 이 조약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지속된 30년 전쟁을 끝내기 위한 조약이었다(30년 전쟁은 독일내 종교갈등과 황제와 제후국, 주변국가의 갈등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독일 인구는 무려 3분의1 이상이 감소되었다). 30년 전쟁을 종결지으면서 독일 영토내에 있는 제후국(귀족이 지배하는 영토)들은 각자의 권리를 인정받으려고 했다. 여기서 해당 영토에서 최고의 권력을 뜻하는 주권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였다(장 보댕의 주권론 개념이 이때 등장한다).


주권은 그 영토에서 최고의 권력을 의미한다. 여기서 오늘날 주권 국가의 중요한 원칙이 탄생했다. 주권은 기본적으로 국가간에 평등하며 타 국가의 주권에 간섭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주권에 기반하여 각 국가는 조약의 체결과 같은 외교 행위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주권은 기본적으로 국가간 상호평등하다고 인정되었다(오늘날 한국 대통령이 외국에 가면 그나라에서 최고 수장이 맞이해야 한다는 원칙도 여기에 해당한다). 영토 크기와 국력에 상관없이 주권 국가는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원칙도 함께 결정되었다.


이렇게 성립한 주권 개념은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그리고 유럽이 전세계를 석권하거나 식민지로 만들면서 이 원칙은 전 세계에 공유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국가가 평등하게 대우받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힘의 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도 적용되고 있으며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제관계 이론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간단히 말해 명목상으로는 평등하게 대하나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권 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면, 전세계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질서와 외교(국제 공조 또는 협력)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역시나 그 시작은 유럽이었다. 시간이 흘러 1815년으로 가볼 필요가 있다. 1815년 유럽에서는 상호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것은 나폴레옹의 영향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유럽을 한동안 힘으로 제패했다. 섬나라 영국을 제외하고 유럽 전체를 군사력으로 굴복시켰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영광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고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러시아의 연합 아래 결국 나폴레옹의 시대는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난 후, 나폴레옹이 휩쓸었던 유럽의 군주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평등과 자유를 없애고 신분제 질서를 복구하려 했다. 또한 나폴레옹의 흔적을 지우고 프랑스 혁명의 흔적을 함께 지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결국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모여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지금으로 치면 강대국 회의 G7 또는 G20같은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원하는 바는 분명했다. 나폴레옹 이전, 프랑스 혁명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영토 분할과 각국에서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자유의 물결을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영토를 서로 교환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위한 유럽 질서를 만들었다. 여기서 성립한 유럽 질서를 빈체제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빈체제를 어길 시 이를 막을 수 있는 군사동맹까지 만든다. 이른바 신성동맹이다. 느낌은 다르지만 지금의 유엔군 역할인 셈이다. 물론 그 목적이 유럽의 예전 질서를 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유의 흐름을 막을 순 없었고 각 나라의 이익 추구를 언제까지나 막을 순 없었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기로 빈체제는 결국 유럽각국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혁명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그러나 이런 공조의 경험은 다시 제1차 세계대전이후의 유럽 협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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