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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계의 역사(2): 제국주의, 1차대전, 소련

세계화 1.0

국제 관계의 역사 2번째 글이다. 1번째 글에서는 국제 질서의 탄생과 공조에 관해서 다루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국제관계가 전세계로 확대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다뤘다.

핵심 키워드는 제국주의, 1차 세계대전, 소련의 등장이다.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는 아픈 기억이지만, 싫든 좋든 이 시기에 전세계는 하나로 뭉쳐졌다.


제국주의

먼저 제국주의를 보자. 제국주의(Imperialism)는 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점령하고 지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식민주의(colonialism)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자국영토로 편입하는 행위는 예전부터 항상 존재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러한 행위가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탐험으로 인한 새로운 지역의 발견, 자본주의 이익 추구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강대국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국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 월등히 우세한 군사력 앞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부분은 유럽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제국주의는 여러가지 영향을 주었지만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세계화다. 왜냐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반강제, 강제적으로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은 이 시기에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성을 획득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영국 영토가 있으니 당연히 해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국은 세계의 25% 정도를 점령했다(검색포탈에 영국 식민지 깃발이라고 검색하면 얼마나 영국의 넓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주요 국가를 제외하고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았던 나라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태국). 이제 전세계는 좋든 싫든 운명 공동체로 엮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를 세계화 1.0이라 부른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5/World_1914_empires_colonies_territory.PNG

1914년 제국주의 식민지 현황(출처: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

식민지 경쟁의 결과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더이상 점령할 곳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국가의 식민지로 눈을 돌렸다. 식민지 경쟁에 뒤늦게 참여한 국가들은 이미 점령한 식민지를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독일 제국이 좋은 예다. 이는 유럽의 갈등을 초래했으며 전세계를 전쟁으로 끌고 들어갔다(전세계가 유럽의 식민지다보니 유럽에서의 전쟁이 자연스레 전세계로 확대되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인 사라예보 사건으로 시작된 전쟁은 3단계로 전개되었다. 1단계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튀르키예(예전 오스만 제국)가 동맹을 맺고 프랑스, 영국, 러시아와 싸운 전면전이다. 2단계는 엄청난 소모전과 참호전으로 인해 교착상태가 지속된 기간이다. 3단계는 미국의 참전과 독일 제국의 패배다. 모든 것을 걸고 4년을 싸웠던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끄는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났다.


전쟁은 국제관계에 두 가지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첫 번째는 단연 미국의 급성장이다. 사실 미국은 세계대전 이전까지 고립주의 노선을 택하여 자국의 고립을 자처했었다(미국 대통령 먼로는 먼로 선언을 통해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막고자 했다. 반대로 미국도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독일과 멕시코가 주고받은 메시지(치머만 전보사건)와 연합국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미국은 전쟁에 개입하였다. 그리고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했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은 전쟁 물자를 유럽에 수출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게 되었다.


두번째는 전쟁재발방지를 위해 국제기구의 창설이었다. 미국 대통령 윌슨을 비롯한 각국의 정치가들은 국제 공조를 담당할 국제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는 오늘날,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이전 버전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가입은 거부되었고, 국제연맹 창설을 제안했던 미국도 정치적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전쟁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수단을 보유하지도 못했다(이는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에서 확실한 한계점을 보여주었다). 이상은 높았으나 실질적인 협조가 되지 않았던 관계로 결국 국제연맹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이후에 국제연합 결성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소련의 등장

전쟁은 소련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조직이자 국가를 탄생시켰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계승한 러시아의 레닌은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 소련)을 탄생시켰다. 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채택한 국가는 역사상 처음이었다. 소련은 사회주의를 채택하면서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를 거부했다(경쟁과 소유권).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2년 넘게 소련에 군사력을 투입하여 이를 방어하려고 했다(소련내전 또는 적백내전). 그러나 소련은 내전에서 승리하여 살아남았고 국제사회는 소련을 고립시켰다(이는 2차 대전까지 지속되었다).


소련은 산업화와 사회주의 혁명 전파로 답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체계를 수립하여 급속한 산업화를 시작했다. 또한 국제사회 고립을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 사상을 전세계로 전파했다. 특히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혁명 사상을 퍼뜨렸다. 중국의 공산당, 식민지 조선의 공산당 등은 모두 이런 소련의 지원에서 탄생하였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 사상 전파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1950년대 세계질서를 주도한 냉전과 탈식민지로 이어졌다.


정리해보면, 1910년대 국제 관계의 주요 지점은 제국주의로 인한 강제적 세계화, 최초의 전세계적 국제기구의 탄생, 소련이라는 새로운 진영의 탄생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질서는 1929년의 세계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한 번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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