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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계의 역사(3): 제2차 세계대전

오늘날 세계의 원형

국제 관계의 역사 3번째 시간이다. 이번 글은 시간상으로 1920년대에서 1945년까지를 다룬다. 이 시기 동안 전 세계는 굵직한 사건들을 겪었다. 1920년대의 번영과 경제 대공황, 1930년대 전체주의의 등장, 제2차 세계 대전 등. 이 모든 사건은 오늘날 국제 질서 형성에 있어 모두 하나씩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할 이야기가 많으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보자.


평화의 시기? 전간기(Interwar?)

최초의 세계 대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엄청난 사상자와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전쟁을 겪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반 대중들의 생각이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평화에 대한 갈망을 이끌어 내었다. 여러 국가에서 분출한 평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이런 국민들의 염원을 담은 행동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전쟁 기간 동안 공장을 비롯한 후방에서 남성들의 역할을 대신한 여성들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움직임을 벌였고 이는 여성 참정권 획득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정치가들과 군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에게 1차 세계 대전에서 앞으로 진행될 전쟁 방식을 학습했다. 비행기와 전차, 전함을 비롯한 각종 신무기는 미래에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고 타 국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다. 그중에서도 군함 건조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1차 대전 동안 독일은 해안 봉쇄로 인해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기에 승전국에게 해군력의 증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여겨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해군 전력의 우위를 더욱 확고히 하려 했다. 신흥 강대국 일본과 미국도 더 많은 예산을 해군에 투자하였다.


종합해보면 1920년대는 평화를 위한 노력과 다음 전쟁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1921년에 미국이 주도하는 워싱턴에 열린 국제 군축(군비축소)회담을 보면 그 양면성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워싱턴 회의는 과열된 군함 건조 경쟁을 위한 막기 위해 강대국들이 모여 군함 건조 비율을 정한 대표적인 평화 회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회담에 참여한 9개 강대국들이 힘의 논리로 세계질서를 재구축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불안정했던 워싱턴 체제는 일본이 1931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무너졌다.


경제 대공황과 전체주의의 등장

전쟁으로 미국은 세계 최고의 채권국이 되었다. 전쟁으로 확대된 국제무역은 미국에 엄청난 부를 선물해 주었다. 게다가 미국은 바다 건너 위치해 있던 탓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미국은 유럽을 대신하여 새롭게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나라로 거듭나게 되었다. 모든 자본이 미국으로 모여들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이 엄청난 호황을 맞았다. 1920년대 연평균 25%의 상승률이 그 효과를 짐작케 해준다. 하지만 투자의 과잉은 결국 오늘날처럼 가상화폐 시장과 같은 거대한 거품경제를 형성하게 하였다. 거품은 1929년 주식시장의 폭발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목요일' 이 시작된 것이다. 주식 가치가 단기간에 70% 정도 폭락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돈을 찾으려고 은행으로 몰려들었고 은행 역시 도산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통화조절 제도인 연방 준비 제도(Federal Reserve)도 힘을 쓰지 못했다(연방준비제도는 경제 부분에서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가리켜 세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명명했다.


경제 대공황은 여러 분야에 악영향을 주었다. 실업률의 증가와 삶을 매우 고단하게 만들었다. 특히 국제관계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각 국가들은 공조보다는 고립체제로 들어갔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온 것이다. 여러 국가들은 다양한 생존 방식을 택했지만 크게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모델, 미국 모델, 독일과 일본 모델이다.


식민지가 많은 국가들 영국과 프랑스는 블록 경제를 택했다. 식민지가 워낙 방대했던 탓에 허리띠를 졸라 메고 버틴다면, 어떻게 극복은 가능해 보였다. 미국은 영토, 자원, 인구가 풍부했기에 극복이 좀 더 쉬웠다. 이 시기에 미국은 자유시장 경제 방향을 국가 개입 형태로 바꿨다. 루스벨트의 경제 정책으로 대표되는 뉴딜 정책의 도입이다. 케인스의 이론에 근거한 뉴딜 정책은 국가가 개입하여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 실제 성과에 대하 논란은 있지만, 미국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있었다. (참고로 소련은 사회주의 경제영역에 속해있었기에 경제대공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성장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같이 식민지가 적거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이었다. 독일은 전쟁에 패배하면서 식민지를 모두 빼앗기고 엄청난 배상금 마저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도움으로 조금씩 살아나던 경제는 경제대공황으로 다시 무너져 내렸다. 경제적 곤궁은 사회 불안으로 이어졌고 이는 히틀러의 집권으로 연결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22년부터 이미 무솔리니의 집권으로 파시즘 정권이 수립되었다. 일본은 군인들이 정치게 개입하면서 1931년부터 전쟁을 개시했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했고 만주국을 수립하여 일본의 괴뢰국으로 만들었다. 국제연맹은 이를 규탄했지만 일본은 국제 연맹 탈퇴로 맞섰다.


제2차 세계 대전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쟁준비는 가속화되었다. 히틀러는 대놓고 군대를 확장했으며,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합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를 묵인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야욕은 멈출 수 없었다. 사실 히틀러의 인기는 군대를 증강하면서 생긴 실업난의 해소와 팽창주의로 인한 경제적 이득때문이었다. 이는 더 많은 영토 요구로 이어졌고 결국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1941년 추축국과 연합국의 영역 지도(출처 위키피디아), 파란색이 연합국이고 검은색이 추축국이다. 붉은색은 소련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 즉, 1939년부터 1943년 까지는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 동맹을 지칭함)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독일에게 점령당했으며, 소련도 유럽 영토의 대부분을 독일에게 뺏겼다. 일본 역시 전선을 확대하여 1941년에는 태평양의 여러 섬과 동남아시아, 중국 해안 영토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후반부는 연합국의 반격이다. 소련은 엄청난 물량과 회복력으로 독일을 압도했다. 미국도 엄청난 물량공세로 일본을 능가했다. 주요 전투에 패배하면서 1943년부터는 일본과 독일의 패배가 시간 문제로 여겨졌다(이탈리아는 진작에 항복했다).


상황이 연합국(영국, 미국, 소련, 중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4개국은 전쟁이 끝난 다음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1943년 카이로 회담이었다.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미, 영, 중은 전쟁이 끝난 뒤 아시아 질서를 어떻게 재편할지를 두고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유럽에서의 논의도 시작되었다. 같은 해 테헤란에서 미, 영, 소가 모여 전후 유럽의 미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1945년 독일과 일본의 항복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연합국의 승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오늘날 현대 질서의 중요한 두 축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이제 유럽의 시대가 가고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시대가 곧 도래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전쟁이 끝난 후, 유럽은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었으며, 소련 공산주의 침략을 막는 데에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역할을 모두 물려받은 국가는 역시 미국이었다. 그렇기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을 여러 학자들은 현대 사회의 출발점으로 파악한다. 특히 국제관계에서는 그 중요성이 배가 된다.


4000만명 이상이 다치거나 죽은 전쟁은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또 다른 전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애초에 공존자체가 힘들었던 자본주의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의 대립이 이제 시작되려 하기 때문이었다. 공동의 적인 추축국에 맞서 미국과 소련은 연합하였지만 사실 두 나라는 완전히 달랐다. 더욱이 소련이 독일 영토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의 지배권으로 편입되면서 유럽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또한 소련은 이전부터 제국주의 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지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 결실을 보게 만들었다. 중국과 베트남과 같은 국가들이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1945년과 냉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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