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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의 역사: 냉전과 탈식민

미국과 소련, 3세계의 등장

1945년 5월 8일, 그리고 8월 15일 각각 독일과 일본의 항복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사상자 수만 4000만 명이 넘었다. 심지어 인류 최고의 무기인 원자폭탄까지 전쟁에 사용되었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 세계에는 다른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바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었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동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상당히 증가하였다. 독일 점령지였던 동유럽을 차례차례 해방시키면서 소련은 각 국가에 사회주의 정부 수립을 지원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만주를 점령하고 북한을 점령하면서 얻은 일본군의 무기를 중국 공산당과 북한군에 인계하였다. 소련은 재차 침공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이를 우려의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영국의 수상 처칠은 이를 두고 '철의 장막'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소련의 위협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래도 공동의 적인 독일과 일본을 향해 함께 싸운 만큼 소련과 미국의 긴장은 1947년까지는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았다.


냉전시기 동맹국들.jpg 냉전국가들을 국기와 지도로 나타낸 지도(출처: 구글 냉전 지도)

1947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의회 연설에서 중요한 발언을 한다. 흔히 트루먼 독트린으로 알려진 이 선언은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터키와 그리스에서 발생한 공산주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트루먼은 의회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선언했다. 곧바로 미 국무장관 마셜은 이른바 마셜 플랜을 발표하였다. 서유럽을 재건하여 소련의 팽창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서유럽과 중국(당시, 중화민국)을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중국의 제2차 국공내전에서는 국민당군의 전투를 도왔고, 서유럽에서는 많은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는 곧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나토)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소련도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베를린을 봉쇄하는 한편, 중국의 내전을 지원하여 중국을 공산화시켰다. 심지어 북한을 지원하여 남한을 공산화하려 했다. 유럽에서는 나토에 대항하기 위해 바르샤바 조약기구(WTO)를 출범하여 군사동맹체제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전 세계는 소련과 미국이 대결하는 전장으로 탈바꿈해 갔다. 물론 소련과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충돌을 원하지는 않았다. 특히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자, 양 측의 충돌은 더욱 자제되었다. 작은 불씨도 큰 불로 번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접적인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차가운 긴장감이 흐르는 상태라 하여 냉전(Cold War)라고 하였다.


소련과 중국은 대신에 대리전을 선호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국과 소련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상대방의 영토를 직접 침공하는 것이 매우 큰 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학습하였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진행되었다. 공식적으로 미국은 북베트남과 전쟁 상태였지만, 북베트남 지역에 직접 군대를 보내지는 않았다(폭격만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군대는 오직 남베트남 지역의 공산주의자들(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 베트콩)을 약화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다. 이런 전장 상황으로 인해 베트남전은 오랫동안 많은 민간인 피해와 상처를 남겼고 실질적인 성과는 미미했다.


소련과 미국의 대결이 한창이던 1950년대부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인도와 동유럽, 아프리카에서 불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유럽의 식민지였던 이 지역의 사람들은 본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했다. 인도에서는 간디와 네루가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으려고 투쟁하였다. 북아프리카에서도 아랍 민족주의가 타올라 식민지 저항 운동이 거세졌다. 실제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지역은 10년 넘게 프랑스와 독립투쟁을 벌인 끝에 독립을 쟁취했다. 결국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생국가들이 탄생했다. 과거 식민지 전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 국가들은 소련과 미국의 대립 속에서 비동맹 중립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제3세계라고 명명했다. 이제 제국의 시대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식민지를 보유한 2차 대전의 승전국들은 점점 그 주도권을 잃어갔다. 게다가 미국마저도 이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종국에는 식민지를 거의 포기하게 되었다. 처음 국제연합 가입국이 29개국이었다면, 1960년대를 지나면서 그 회원국이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1960년에만 무려 19개 나라가 유엔에 가입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주권국가로 인정받으면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단결했다. 이제 세계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외에도 또 다른 진영의 탄생을 목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렵사리 정치적 독립을 이룬 제3세계는 경제적 빈곤뿐만 아니라 부족 내 갈등으로 인하여 대부분이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내전과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이런 모습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게 되었다. 탈식민은 축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제3세계.jpg 제3세계를 녹색으로 표시한 지도(출처는 오른쪽 아래에 표시됨)


글의 말미에 연재를 혹시나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가 현재 올리고 있는 '세계사,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에 잠시 집중하고자 국제 관계 연재를 쉬어가려고 합니다. 연재가 끝난 다음에 현대 세계의 변화와 함께 국제기구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히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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