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드립니다(6).
그리스 세계와 로마제국
by 세상을 읽는 지식 소개 Jan 1. 2025
시리즈 6번째 이야기이자 제국 2번째 이야기입니다. 제국을 한 편의 글에 정리하고 싶었으나 분량이 너무 많아져 고민 끝에 로마를 따로 다루기로 했습니다. 사실 로마를 설명하려면, 그리스 세계 이야기도 해야 하기에 따로 분량을 추가로 할애했습니다.
로마제국은 유럽 역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가볍게는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서력)의 이름부터 무겁게는 현재의 법체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의미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원래 표현도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서 유래했다는 사실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 역사가들은 로마를 호수에 비유합니다. '로마 이전의 역사는 모두 로마로 흘러 들어갔고 로마 이후의 역사는 모두 로마에서 나왔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로마의 출발은 상당히 미약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753년에 건국되었다고 나옵니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는 변경이었습니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는 오른쪽 바다를 건너 그리스에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등장하여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들 중 두각을 드러낸 도시 2개가 있었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였습니다. 아테네는 점차 남성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스파르타는 소수의 스파르타인들이 다수의 노예를 지배하는 군인 중심의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도시국가들이 있었지만 기원전 500년대 그리스 세계는 느슨한 연합체제였습니다. 변화는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찾아옵니다. 그리스 세계가 연합하여 페르시아를 물리쳤지만, 언제 페르시아 제국이 또 쳐들어올지 몰랐습니다. 아테네는 이를 위해 동맹 시스템을 구축했고 가입도시를 늘리기 시작했고 이런 행동이 스파르타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서 온 그리스 세계가 전쟁에 휩싸입니다.
당시 로마는 왕들이 다스리는 도시 국가에서 공화정(republic)이라는 당시로서는 낯선 형태로 정치 형태를 바꿉니다. 1년마다 대표를 새로 뽑아 독재를 방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로마 주변의 도시들을 정복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마는 점령국을 속국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중심의 정치 공동체를 구성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위와 공적에 따라 로마 지배층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렇게 커져 나가던 로마를 결정적으로 바꾼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포에니 전쟁과 마케도니아 전쟁입니다.
포에니 전쟁과 마케도니아 전쟁은 기원전 260년에 일어났던 큰 전쟁을 말합니다. 당시 이탈리아 남부와 북아프리카는 카르타고라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카르타고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로마와 영토분쟁을 겪게 되면서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3차에 걸친 전쟁에서 로마는 당시 카르타고의 전설적인 장군 한니발에 의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힘겹게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전쟁은 당시 그리스 세계의 주도권을 마케도니아 왕국과 벌인 전쟁을 지칭합니다. 여기서 로마는 마케도니아 왕국을 분쇄하고 그리스의 도시 동맹을 해체시켜 버립니다. 이 시기부터 더 이상 그리스는 지중해의 문화를 주도하는 지위를 내려놓게 됩니다.
두 전쟁을 통해 이탈리아 중심의 로마는 지중해 중심 국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지중해의 제해권을 손에 넣었으며, 마케도니아 전쟁을 통해 그리스 세계를 흡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 문화가 로마로 유입되게 됩니다. 로마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색채를 입힙니다. 이후 로마는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브리타니아(영국), 게르마니아(독일), 서아시아와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엄청나게 몸집이 커지게 됩니다. 이런 정복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은 오늘날 시저라고 불리는 카이사르의 정복이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몸집이 몇 배로 불어난 로마는 영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었습니다. 정복지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노예와 공물로 인해 로마의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빈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수한 대표를 뽑았던 공화정 시스템은 이제 자신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는 선동정치가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게다가 로마에게 영광을 가져다주었던 카이사르는 점점 독재자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카이사르는 로마 귀족들에게 암살당했지만, 그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가 다시 권력을 잡게 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 존엄한자 라는 칭호를 받음) 겉으로는 공화정을 존중하지만, 종신독재관으로 활동하며 로마를 지배합니다. 왕 또는 황제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기원전 27년부터 로마 공화정은 로마 제국으로 변했습니다.
황제 시스템은 안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특히 군대 지휘권이 황제에게 집중되어 있었기에 더 이상 내전은 발발하지 않았고 제국은 안정기를 맞이했습니다. 로마는 페르시아 제국과 유사하게 점령지의 관습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물론 로마에게 반항하지 않는다는 선에서요. 또한 로마군으로 복무하면, 로마 시민권을 주어 동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역대 로마 황제 중 이탈리아 출신보다 비 이탈리아 출신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로마는 점점 다민족 국가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로마의 영토(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
로마의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는 에스파냐, 프랑스, 영어, 독일어로 변화되었습니다. 로마군이 주둔한 도시는 대도시(본, 쾰른, 런던 등)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뒤늦게 정복한 다키아 지역은 완전히 로마화 되어 지금도 국가 이름을 루마니아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 중 하나는 크리스트교였습니다. 한 때 로마 제국의 탄압을 받았던 크리스트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공인 이후,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로마의 공식종교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로마 영토는 모두 크리스트교를 믿는 지역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죠.
로마는 476년,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인해 멸망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제기되었습니다. 농업 생산력의 한계, 잦은 황위다툼으로 인한 국력 소모, 노예 공급의 중단 등이 그 원인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로마 제국은 살아남아 1000년을 더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제국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은 로마제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된 이유를 수용과 개방에 두고 있습니다. 앞서 다뤘던 여러 제국들은 처음에 빛나는 군사적 승리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엄청난 부를 손에 넣어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이렇게 성립한 제국들은 결국 자신들의 특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곧 폐쇄적인 사회로 이어져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다른 신흥국가에게 멸망당하는 걸로 끝났습니다. 반면 로마는 다른 피정복 국가 혹은 종족의 문화라도 과감히 수용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점이 지금 우리에게도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여 로마제국만 따로 다루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국 운영이 각 지역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세계의 변화 방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