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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서평

전쟁사 입문을 위한 첫 걸음

1부: 소개


전쟁과 전쟁사는 흥미롭지만 참 어렵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군사학을 연구하고 전쟁을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본 제레미 블랙(Jeremy Black)은 그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는 전쟁사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큰 틀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행위가 매우 복합적이며 부분적인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역사를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닫게 되는 이런 사실이 전쟁이라는 분야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블랙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라고 제목이 달린 책은 그런 저자의 견해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 가지고 있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서해문집, 출처: 교보문고)


한글 제목과 달리 책의 원문 제목은 A Short History of War이다. 원문 제목을 소개한 이유는 한글판 제목이 주는 중압감 때문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왠지 모르게 전 세계의 모든 전쟁을 다룬 아주 두껍고 무거운 벽돌 같은 책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랙도 결론 부분에서 무기가 될 수 있는 그런 분량의 책과 간략한 소개서 사이에서 집필을 고민했다고 언급했다. 실제 책은 400쪽 정도로 중간 정도의 분량을 가지고 있으며 결론을 포함해 총 40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전쟁의 기원, 즉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공간적으로 보면 유럽, 아시아는 물론이고 오스트레일리아와 아프리카의 전쟁까지 말 그대로 전 세계 전쟁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책은 단순 나열식의 서술 형태를 취하고 있지는 않다. 한 장(章) 한 장(章)마다 독립된 주제로 책을 쓸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저자는 시기별로 나타난 전쟁의 성격 변화, 지역적 차이에 따른 전쟁 양상의 차이, 기존의 인식을 반박하는 최근의 전쟁사 연구 결과 등을 전달해준다. 첫 번째인 전쟁의 성격 변화부터 살펴보자. 블랙은 다른 전쟁사 서적과는 다르게 선사시대를 전쟁사 서술에 포함한다. 전쟁의 기원을 선사시대에 행해졌던 생존을 위한 수렵 활동으로 설정한 저자의 설명은 전쟁이라는 행위가 인류의 생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또한, 저자는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하여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쟁의 성격도 함께 바뀌었음을 역설한다. 초기 전쟁의 목적이 단순히 자원취득을 위한 직관적인 목적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후에는 국가 명성의 유지, 정복 민족에 대한 공포감 조성, 외교적 수단으로 다원화되었다는 서술이 그 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블랙은 오늘날의 전쟁이 중요한 변화를 겪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관념은 전쟁을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으로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국가 내부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언급한다. 또한, 국가를 특정할 수 없는 전쟁의 양상이 나타났다는 의견도 개진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그런 양상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지역적 차이에 따른 전쟁 양상의 차이는 지구사적(global history) 접근법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 많이 출간되고 있는 형식인 ‘00의 역사’처럼 해당 주제와 관련된 각 지역의 역사를 전 지구적인 맥락에서 탐구하는 방법이 지구사적 접근법이다. 저자는 각 지역의 전쟁 양상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블랙은 기존 유럽 및 아시아 중심의 전쟁사 서술을 극복하려 한다. 역사 서술에서 자료의 부족 및 서술 공간의 부족으로 인해 제외된 여타 지역들을 블랙은 과감히 하나의 주제로 끌어올려 편성했다. 여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신항로 개척 이전의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와 같은 지역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모습이 서술되어 있다. 이런 서술은 흔히 우리가 군사적 우세의 이유로 유럽의 식민지 정복이 수월했다는 인식을 전환해 준다. 대다수의 경우에 유럽의 군사적 침략은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이 컸으며 실제로도 유럽은 식민지 침략에서 많은 군사적인 패배를 맛보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는 19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제시된 유럽의 우월성이 현재까지 고수되면서 이전의 역사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


기존의 인식을 반박하는 최근의 전쟁사 연구 결과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중세 기사에 관한 부분과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중세의 전쟁을 떠올리면 화려한 문양에 판금으로 말과 사람을 덮은 기사들의 전투를 떠올린다. 저자는 이런 전투방식이 십자군 전쟁 이후에나 유효한 전투방식이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블랙은 그전 시기의 전투는 모두 보병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강조한다. 1,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독일에 대한 평가는 더 철저하고 다각도로 규명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동안 전쟁 초반의 기적에 가까운 승리로 만들어진 ‘무적의 독일군’ 신화에 가려져 실제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이 과대 평가되었다고 블랙은 강조한다. 게다가 흔히 인용되는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단어 역시 독일에서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었다는 점, 특정 전투에만 시선이 몰려 있어 많은 이들이 전체 전쟁 기간에 걸친 독일의 전투 수행 능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는 점도 일깨워 준다.


2부: 민족주의와 전쟁사


블랙의 책은 우리의 전쟁사 인식이 현재주의(presentism) 역사 서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오늘날의 민족국가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사 서술이 편향되어 서술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또한, 우리가 은연중에 이런 관념을 은연중에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 교과가 국가 정체성 확립과 강화에 기여한다는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민족주의는 그런 인식을 형성하는데 기준점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양대 혁명 사이에서 태어난 민족주의는 근대국가 운영의 기본원리로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국민에게 자민족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하나의 공동체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로 역사를 선택했다.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은 여기에 아주 좋은 재료였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민족의 황금기를 이룩한 순간은 그 어떤 역사적 사건들보다 자민족의 우월성을 증명할 수 있는 예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쟁사는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민족 중심의 전쟁사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이를 방법론적 민족주의(methodological nationalism)라고 지칭한다.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을 비롯한 각종 학문의 서술 기조에 민족주의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런 모습은 일상 용어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경제나 사회를 지칭할 때 한(韓)민족이라는 개념을 항상 중심에 놓고 판단한다. 이는 자민족뿐만 아니라 타민족을 지칭할 때도 그렇다. 때문에, 역사 서술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모든 역사 서술의 기준은 해당 민족이 걸어왔던 여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책에서 나왔던 블랙이 비판했던 유럽중심 사관은 그런 결과물이다. 자민족의 군사적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패배한 전투는 언급하지 않고 승리한 전투만 언급함으로써 유럽 국가들은 그런 기억들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학문을 통해 이를 증명하려 하였고 영화와 대중문화로 이를 대중의 기억들로 변화시킴으로써 그 지위를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시중에 인기를 끌고 있는 대중 영화는 모두 그런 생각들을 실제 사실인 마냥 혹은 일부분이 전체인 듯 그려내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영화 300(잭 스나이더)은 그런 시각의 대표적인 부산물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한국사도 마찬가지다. 블랙이 다루고 있는 임진왜란에서 거북선의 역할은 돌격보다는 함포사격이 주목적이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영화에서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해석이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한국사 서술에서 민족통일을 이룩한 승리로 꼽히는 나·당 전쟁과 대거란전쟁을 살펴보자. 나·당 전쟁에서 신라군이 당군을 격파한 사실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 당은 지금의 티베트 즉 토번과 전쟁 중이었고 해당 시기에 토번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겪으며 전황이 불리하였다. 이는 당나라가 온전히 군사적 역량을 신라에 쏟을 수 없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에서 이런 사실을 다룬 서술은 드물었다. 이런 사실들이 조망되기 시작한 것은 동아시아사라는 과목이 생성되고 난 이후의 일이다. 대거란전쟁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韓)민족의 3대 대첩이라고 불리는 귀주대첩에서 고려군은 거란군은 2배의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물론 병력의 숫자가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전투에서 유리한 요소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왠지 모르게 대다수 책에서 명기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책을 점차 읽어나갈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사는 그 본연의 모습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평소에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지게 된 복합적 사고의 중요함을 또 한 번 체감하게 해준다. 영웅의 활약이나 단일 요소를 결정적인 요인으로 확정해버리는 역사 설명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 말이다. 더욱이 그러한 해석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 고민을 해보도록 이끈다. 그렇기에 블랙의 책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 처음에는 단순히 인지 부조화 현상이 발생한다. 당연하다고 여긴 역사적 사실과의 충돌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 검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3부: 마무리하며


전쟁사를 다룬 저작은 많다. 온라인 서점에 “전쟁사”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결과물이 나온다. 그중에는 명작들도 많다. 가장 유명한 전쟁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영국 장군 출신의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가트의『문명과 전쟁』 등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또는 밀리터리 마니아층을 위한 저작물도 상당하다. 주로 특정 전쟁, 무기를 중심으로 다룬 이런 책들 가운데도 우수한 저작들이 있다.


그럼에도 블랙의 책을 선정한 이유는 세 가지다. 전쟁이라는 개념을 역사적으로 접근한 점, 최신의 연구 경향을 알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부담이 되지 않는 분량이다. 기존 도서와는 달리 전쟁이라는 행위가 어디에서부터 기원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시간상으로 간결하게 다룬 점은 확연히 전쟁사학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접근법일 것이다. 그리고 매우 최근의 흐름까지 반영하면서 부담이 심하지 않은 분량에 녹여냈다. 글쓴이는 이런 점을 높이 샀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2가지 유의 사항을 덧붙이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첫째는 책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지는 무게가 꽤 무겁다는 것이다. 한 장마다 10쪽 내외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 요소는 상당히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전쟁사 관련 내용을 알고 있더라도 가끔은 책 내용을 한 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이는 저자의 서술 방식 및 번역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유난하지는 않지만, 저자 역시 문장을 길게 쓰는 서술 방식을 취하였고 번역가 역시 이를 따랐다. 그렇다 보니 가끔은 난해한 문장에 막혀 책 내용의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오역의 문제)


많지는 않으나 번역의 문제가 있음을 언급하려 한다. 번역 때문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두 군데 있었으며 오타가 한 부분 있었다. 238쪽 임진왜란을 다룬 부분에서 번역가는 international power를 국제적 세력이라고 번역하였다. 하지만 글의 흐름으로는 국가 간의 세력 또는 힘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해 보인다. 284쪽은 오역이다. 원문을 번역해보면 “오스트리아 보병도 진보한 강선총을 갖고 있었지만 적절한 사거리 측정과 조준 훈련을 받지 못했기에 프랑스군은 가까이 근접할 수 있었고 총검을 쓸 수 있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300쪽은 단순한 숫자 표기 오류이다. 1839년부터 1845년이 아니라 1839년부터 1945년으로 표기해야 한다.



둘째는 전쟁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다. 책은 분명 교양 도서로 쓰였고 전문군사도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군사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순 없다. 문제는 이런 용어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아 낯설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점을 최소화하려 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에도 여전히 종심방어, 전략적 목표와 전술적 목표, 비대칭 전력과 같은 개념들은 머릿속에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때문에, 가끔은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여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고 하였다.


문장의 무게가 무겁고 용어가 낯설지라도 책이 주는 가치는 높다. 지금 세계의 정세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21세기에 누구도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다른 국가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기어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했고 글쓴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도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각종 언론에서 비추어진 모습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군사적 패배를 당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러시아 역시 첨단 무기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여겼지만, 실제 러시아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받은 성적표는 초라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보도 방향이 주로 서방세계 중심이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침공행위가 정당했다는 점을 의미하진 않는다. 게다가 전쟁은 결국 동유럽과 유럽의 전쟁 공포를 키웠고 전쟁의 공포감을 불러일으켜 동유럽의 재무장을 촉진하였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국산 무기 수출 소식은 그런 전쟁이 우리의 삶과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 전쟁이라는 행위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보는데 블랙의 책은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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