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문구다. 되뇌여 보면 볼수록 와닿는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털어놓는 고민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언제나 인간관계다.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등 사람들은 오늘도 인간관계에 관하여 고심한다. 각자의 삶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글쓴이도 마찬가지다. 글쓴이를 둘러싼 고민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 나가다 보면 결국 종착지에는 사람이 서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쉽사리 자신의 마음을 말해주지 않는다. 추측하고 예상해야 한다. 그렇기에 가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여기에 지쳐 때론 사람들과 거리를 둬보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금 사람들에게로 돌아간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이 글쓴이를 혼자 있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괴롭히기 때문이다. 쳇바퀴 같은 상황을 반복하면서 문득 ‘만약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인간관계는 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은 글쓴이의 질문에 답을 해줄 듯이 보였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인간관계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했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점차 바뀌던 차에 심리학은 새로운 빛이었다. 특히나 사회심리학, 정신분석학과 같은 학문은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상황에서 심리학 이론들을 하나하나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게다가 어설프게 심리학 이론을 적용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글쓴이가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했던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이런 고민에 다른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가 확립한 개인심리학은 글쓴이와 같이 타인의 심리를 알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 초점을 둔다. 다시 말해, 내가 타인의 심리를 왜 알려고 하며, 그로써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에 중심이 놓여있다. 아들러라는 이름이 낯설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현대 심리학의 기초를 놓은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아들러의 심리학은 나머지 두 학자들과 입장을 달리한다. 프로이트와 융은 과거를 활용하여 현재의 정신 상태를 설명하는데 비해, 아들러는 현재의 상태가 과거를 정의한다는 정반대 입장에 위치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이런 아들러의 생각을 저자가 재해석하고 현실에 맞게 재가공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 출처: 교보문고)책속으로
책은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주로 아들러 심리학 이론을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2권은 1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행동지침을 담고 있다. 책은 여타 심리학 서적과는 다르게 대화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인간관계에 대하여 고민이 많은 한 청년이 아들러 심리학에 그리스 철학을 접목한 철학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들러 사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런 대화체의 특징은 일반 독자들이 가질법한 의문을 청년이 대신 질문하면서 책의 이해를 좀 더 수월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물론 이 글에서 주로 다루는 책은 1권이다. 저자는 2권이 1권의 속편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1권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2권의 대화가 이루어지기에 여기에서는 1권을 주 대상 도서로 삼았다.
총 5장의 형식을 취한 책의 목차는 대화체의 설정에 맞추어 주제별로 1일, 2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밤의 대화 주제는 트라우마를 부정하는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아들러는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저자는 기존의 인과관계적 사고에서 벗어나 현재를 지향하는 목적론적 사고로 눈길을 돌리라고 권한다. 두 번째 밤의 대화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 있으며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다는 주장을 펼쳐나간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고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 번째 밤의 제목은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다. 그 근거로 저자는 타인을 의식하여 살아가는 삶은 나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고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라고 권유한다. 네 번째 밤은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여기서는 앞서 말했던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고자 하는 생각의 최종목적이 모두 공동체를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힘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날인 다섯 번째 밤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서 저자는 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타인을 신뢰하고 끊임없이 타인에게 공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자신이 평범하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래와 결과만을 추구하는 삶 대신 과정에 의미를 두라는 조언을 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기억해 두고 싶은 문구가 많았다. 그만큼 공감이 많이 되었다. 특히나 외로움에 관한 설명, 목적론적 사고,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라는 내용들은 몇 번이고 되뇌어봐도 정말 놀랄만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먼저 외로움에 대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자. 저자는 외로움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지구상에 아무도 없고 오직 나 혼자라면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은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이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 혼자가 완벽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외로움과 고독은 단순히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나의 비교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하는 삶을 산다면 해결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렇다고 하여 타인과 상대방을 전혀 비교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저자는 주변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하지 말고 친구로 인식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주변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인간관계가 경쟁에서 협력의 관계로 전환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나아가 외로움과 고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목적론적 사고는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신선한 사고일 것이다. 주로 1권 1장과 2권 전반에 쓰여있는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은 ‘지금, 이 세계’에 과거는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대부분의 심리학을 비롯한 학문들이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는 인과관계적 사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를 이용한다고 한다. 즉 많은 과거의 기억들 가운데서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를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책에 나와 있는 예시도 그렇다. 자신이 과거의 사건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지금의 자신의 상태를 합리화하고 유지하고 위해 과거의 기억을 선택하고 조작한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결국 과거는 마음먹기에 따라 현재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기에 저자는 과거와 현재와의 연결을 끊으라고 권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용기’다. 지금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용기 말이다. 상당히 공감되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 사건을 같이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억하는 내용이 저마다 다르다. 아무래도 기억의 선택기준이 개인마다 차이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준다. 과거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니 우리는 부정적인 과거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럴듯하면서도 완전하게 공감이 되진 않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 이런 목적론적인 생각은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현재를 비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두 번째에서 언급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나 자신에게로’라는 의미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될까에 대하여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타인의 시선 때문에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의 시각에서 이런 것들은 타인에게 인정받길 원하는 인정욕구로 똘똘 뭉친 타인의 삶이다. 다시 말해 이런 삶을 사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길 원한다. 그래서 해야 할 말임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삯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어느 순간 폭발해서 더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저자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이런 일을 방지해준다고 한다. 타인의 과제와 자신의 과제를 나누어 자기 일을 묵묵히 하라고 권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라고. 책에서 한 청년이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이기적으로 비쳐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했지만 저자는 그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미움받을 용기라고 말한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과 촘촘하게 엮여서 자신과 타인의 과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글쓴이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행동방침에 적지 않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 한다.
책밖으로
물론 저자의 생각에 쉽게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꽤 있다. 대화에서 청년이 늘 말했듯이 저자의 생각에는 단정적이고 이상적인 부분이 많다. 가령 2권에서 나오는 말 중에서 ‘과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저자의 입장은 글쓴이에게 많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들러는 원인론을 거부하였다지만 사실 인과관계를 활용한 설명방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발전과 혜택을 안겨주었다. 학문 분야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OO과학이라고 붙는 대다수 학문은 인과관계에 근거한 사례들과 이론들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저자의 주장대로 인간이 과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원인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당장 앞으로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에 대해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그저 막막함이다. 특히 사람들이 평소에 즐겨보는 논픽션 관련 서적은 저자의 관점으로 보면 죄다 끼워 맞추기식 서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인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너무 단정적인 해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글쓴이 역시 아직도 인과관계 사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가하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만약 아들러의 심리학을 전면 수용한다면 우리는 얼마 동안이나 그 가르침을 따를 수 있을까?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들러의 가르침을 수용한다면, 아들러 또는 저자가 그린 세상은 유지, 존속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매우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개인과 타인의 과제를 구분하고 상대방을 적이 아닌 친구로서 신뢰하면서 공동체에 헌신해야 한다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오히려 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소수일 수 있다.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틈새에서 과연 아들러 사상을 가지고 꾸준히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또한, 설사 그렇게 이룩한 사회가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사회일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기대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그럼에도 책은 이전까지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저자는 글쓴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그동안 타인의 감정을 읽고 싶은 욕구 혹은 상처받고 싶지 않은 욕구가 빚어낸 심리학의 렌즈에서 눈을 떼라고 한다. 그리고선 아들러라는 커다란 전신거울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자신과 마주하고 지금 있는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다. 아마 책 제목도 이런 점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저자도 후기에 써놓았듯이 책은 아들러 사상 전부를 담진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저자가 이해한 아들러 사상에 고대 그리스 철학을 곁들였다. 하지만 아들러의 생각을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은 해당 책의 제일가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책은 여타 심리학 서적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글쓴이처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고 주변 사람들이 계속 신경 쓰여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책은 적잖은 용기를 줄 것이다.
끝으로 최근 급격하게 MBT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정확한 검사는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간단한 설문 조사에 참여하면 곧바로 결과를 알 수 있다.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직접적인 대인접촉이 줄어든 탓에 상대방의 성격이나 특징을 빨리 파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해당 결과가 정확하다고 말할 순 없다. 게다가 16가지 유형으로 사람들을 단순화하기 어렵기도 하다. 더욱이 그 사람의 MBTI를 토대로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기란 상당히 어렵고 때론 위험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 하나 빠져 있다. 그 사람의 심리를 알고 싶어하는 자신에 대한 고민. 『용기』를 읽었던 시간은 글쓴이에게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시간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은 자신을 새롭게 돌아볼 필요가 있는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미움받을 용기』를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