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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분쟁에 나타난 현대사의 틀

민족주의, 제국주의, 냉전

우리는 1945년 이후 지금까지를 현대사(contemporary history)의 범주에 포함시킵니다. 혹자는 지금을 ‘탈현대’ 또는 ‘지구화 시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무력 충돌을 바라보면 우리가 여전히 1945년이 만든 세계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세계가 정말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분쟁은 단순한 국경선 다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유효한 20세기의 키워드들: 민족주의, 제국주의, 냉전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세계사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오늘날의 갈등 구조를 설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강력한 틀을 제공합니다.


Interactive_Thailand_Cambodia_clashes-1753350191.png?quality=80 태국과 캄보디아 무력충돌 상황을 묘사한 지도


민족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장 강력한 정서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갈등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프레아 비히어 사원입니다. 이 사원은 고대 크메르 제국의 유산으로, 캄보디아에게는 단순한 종교 유산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문제는 이 사원이 태국과 접경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제작된 지도에서는 태국 땅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19세기말부터 두 나라는 이 지역을 두고 충돌해 왔으며, 프랑스가 물러간 이후에도 사원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1962년 캄보디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고, 재판소는 프레아 비히어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에도 간헐적인 군사적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2008년, 유네스코가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캄보디아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태국 내에서는 강한 반발이 일어났고, 다시 무력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발생한 2025년의 충돌 역시 이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이는 곧 민족주의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정치적 실익이 맞물릴 때 얼마나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족주의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땅’, ‘우리 문화’, ‘우리 역사’라는 인식은 때로는 사실 여부보다 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상상된 공동체’라는 개념처럼, 민족은 과거를 재구성하고, 현재의 국가 경계와 충성심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그런 민족주의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의 흔적: 경계가 남긴 분쟁의 씨앗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국경은 그 지역의 종족, 언어, 종교적 공동체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의 식민지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 산물입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장악하면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하나의 연방처럼 통합했고, 시암(지금의 태국)과는 여러 차례 외교 협상을 통해 국경선을 조정했습니다.

OIP.jpg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시절 지도

1907년 프랑스-시암 조약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조약에서 프랑스는 태국으로부터 프레아 비히어 인근 지역을 포함한 여러 영토를 넘겨받았고, 이 과정에서 그려진 국경선이 오늘날까지 법적·정치적 기준선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이 경계가 철저히 프랑스 식민 행정의 편의에 따라 그어졌다는 점입니다. 실제 공동체의 생활권, 문화권, 종교권은 고려되지 않았고, 지도의 선 하나가 공동체의 삶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프랑스는 단순히 영토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인종적 위계와 문화적 우월성을 근거로 민족 정체성을 재편성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 교육은 크메르 민족과 태국 민족의 차이를 강조했고, 행정 구역도 민족 단위로 구획되며 서로에 대한 배타성을 조장했습니다. 이처럼 제국주의는 단순한 물리적 지배를 넘어, 분열과 경쟁의 기억을 남기는 방식으로 민족주의의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프랑스가 떠난 지 오래지만, 그 경계선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가 현대의 총성과 외교적 갈등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냉전의 재등장: 두 초강대국의 그림자

오늘날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갈등은 단지 양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지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패권국가가 서로의 영향력을 놓고 다투고 있는 핵심 전략지대입니다. 태국은 냉전 시기부터 미국과 긴밀한 군사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태국은 미군의 병참기지와 항공 기지로 사용되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미국의 군사 훈련 및 무기 시스템과 연계되어 왔습니다. 최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역시 태국을 중요한 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 캄보디아는 최근 몇 년 사이 중국과의 관계를 급속히 강화해 왔습니다. 중국은 시아누크빌 항구 개발, 고속도로 건설, 경제특구 조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캄보디아에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고 있으며, 군사 협력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 서남부 해안에 위치한 르암 해군기지를 중국이 장기 임대했다는 보도는 미국과 서방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기지가 남중국해를 통제하는 중국의 전략거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처럼 태국-캄보디아 국경은 단지 동남아의 분쟁지대가 아니라, 미중 전략 경쟁의 전선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 냉전은 이념을 중심으로 한 동맹 체계의 경쟁이었지만, 오늘날의 ‘신냉전’은 기술, 안보, 공급망, 인프라, 영토 영향력을 둘러싼 다층적 경쟁 구조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태국과 캄보디아는 그 접점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1945년 체제의 유산

우리는 지금을 현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현대’는 과연 얼마나 새롭고 독립적인 시대일까요? 태국과 캄보디아의 분쟁을 보면, 여전히 민족주의가 외교의 중심에 있고, 제국주의가 만든 경계선은 여전히 갈등의 이유가 되며, 냉전의 논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현대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시대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동남아 상황은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지도를 따라 걷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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