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샀던 CD 음반은 이승환의 라이브 앨범 '무적전설(無敵傳設)'이었다.
인터넷이 막 시작되던 세기말에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H.O.T나 젝키 같은 아이돌보다는 이승환이나 패닉, 전람회를 좋아하던 아싸(?)였다. 집에서 받는 얼마 안 되는 용돈과 급식비로 받는 식권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팔아서 모은 돈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야자시간 내내 듣곤 했다. 그러다가 우리 반의 아싸 친구들끼리 공동구매처럼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산 CD 앨범이 이승환의 라이브 앨범이었다. 콘서트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라이브 앨범을 수십 번 들으며 내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아이돌 노래의 의미 없어 보이는 가사들보다 서사가 있는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노랫말 하나하나를 곱씹게 되는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
최백호 님을 사실 잘 알지는 못했다.
그냥 트로트 성인 가요시절의 옛날 가수라는 것만 알았고 관심도 없었고 노래도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만 알았지 20대의 나에게는 부모님 세대의 노땅 가수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30대가 되었고 한참 힘들 시기에 '부산에 가면'이라는 노래를 듣고 아무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노래 가사는 온통 부산 이야기뿐이고 나와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데 그 멜로디와 그 목소리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 이후로 나온 '두 손, 너에게'라는 노래에서 해답을 얻었다.
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넌 나아가고 있단다.
캄캄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아서
눈을 깜빡이는
넌 아주 아름답단다.
-두 손, 너에게. 스웨덴 세탁소(feat. 최백호)
나는 어른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 동안 내 곁에 항상 있던 꼰대 말고 진짜 어른에게 너는 지금 잘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잘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가? 힘이야 들었겠지만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이 잘한 것일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돈보다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는 후회를 안 할 자신이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던 와중에 최백호 님의 목소리는 '괜찮아. 너는 틀리지 않았단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후회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최백호 님의 목소리가 다 걷어내 주었다.
그렇게 최백호 님의 목소리, 그 노래를 마음으로 듣게 되었다.
누구라도, 언제 어떻게 닿을지는 모르지만 나를 안아주는 마음의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