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잔병이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기저기 자잘하게 아픈 곳이 많았다. 툭하면 흘리던 코피와 왜인지는 모르지만 두통을 달고 살아서 한국인의 두통약 게보린을 일주일에 세네 번은 먹었던 것 같다. 그 분홍색 알약을 먹으면 아픔이 마법처럼 사라지기에 병원에 데리고 갈 시간도 없이 일하시던 부모님은 게보린을 몇 개씩 집에 사놓으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귀신같이 걸리는 장염은 만성이 되어버려서 지금도 그 기운이 느껴지면 알아서 지사제를 준비해놓곤 한다. 심하게 아픈 것이 아니고 어설프게 아프다 보니 부모님이 쉬는 것도 눈치가 보여 웬만하면 참고 참다가 정 힘들면 알아서 약통을 뒤적여 약을 챙겨 먹곤 했다. 게보린 한알이면 다 괜찮아지니까.
고등학교 때 심하게 배탈이 난적이 있었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복통이었지만 평소에 걸리던 장염인 줄 알았던 어머니는 아침에 작은 양은 냄비로 흰 죽을 끓여 간장 종지와 놓고 공장으로 출근하셨다.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밥 먹고 병원에 가려고 간장 한 숟갈 섞은 죽을 먹다가 의식이 아득해졌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119에 전화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식중독이라고 몇 가지 주사와 링거 한 대 맞고 나왔다. 그 와중에 부모님께 알려질까, 응급실 비용이 걱정되어서 동생을 불러 몰래 아르바이트하며 모았던 돈을 뽑아오라고 해서 해결했다. 119에 실려간 걸 본 이웃들이 저녁에 퇴근하시는 부모님께 말을 전해 크게 혼나기는 했지만 아프면 혼자 알아서 해오던 버릇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면서 생활비에 쫓겨 살다 보니 잔병이 들어올 틈이 없어진 듯했다. 그러다 일 년에 한 번 두 번 크게 앓고 다시 괜찮아지고를 반복한다. 원래 슬쩍 들렀다 갔을 잔병들이 모이고 모여 한방에 터뜨리는 느낌이다. 이런 걸 아들이 물려받지 않았으면 했는데, 누구 자식 아니랄까 봐 아기 때부터 온갖 유행하는 잔병들을 다 겪으면서 자라나고 있다. 감기부터 시작해서 중이염, 임파선염에 조금만 피곤해도 흘리는 코피까지 지 애비 어렸을 때랑 똑같다. 아빠가 유행에 민감하다고 코로나도 두 번 걸려서 골골거렸더니 아들 녀석도 따라서 두 번이나 걸려 똑같이 골골거렸다. 적어도 예전처럼 게보린 한알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한다. 어렸을 적 아파도 혼자 참았던 시절이 내 한이었다보다 라고 생각해보곤 한다.
요즘 또 임파선염 걸려서 며칠째 열이 안 떨어지는 아들이다.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주고 손발을 닦아주는 부모마음을 이 녀석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모르면 어떠랴. 나도 예전 부모님 마음 몰랐었은걸. 내가 부모 되고 나서야 알았으니 이 녀석도 나중엔 알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요즘 쏭이 자꾸 흥얼대는 노래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이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