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끄적-22. 책임감

가장의 무게, 그리고 철인 82호의 각성

by 선호

책임감이라는 감정은 무엇일까?


부모님은 일평생을 육체노동 일을 하시면서 살아오셨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셔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시고 20대 청춘시절부터 그렇게 일을 해도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로만 살아갔던 도시노동자였다. 두 분이 만나 결혼하고 나와 동생을 낳고나서 악착같이 돈을 버셨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어머니는 밖으로 일을 나가지 못하시니 집에서 하는 부업을 하며 우리 형제를 돌보셨다. 좁아터진 단칸방에서 천으로 된 전화기 받침대를 만들고, 쇠로 된 작은 절구로 단추를 만들기도 했다. 손목이 나가고 허리가 아파하는 부모님께 나와 동생은 밤마다 조물조물 안마를 해드리곤 했다. 그렇게 주 6일, 7일을 일하시는 와중에도 짬이 나면 자식들 데리고 산으로 강으로 나들이를 가주시는 철인들 이셨다.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가셨을까 보단 우리 집은 왜 이리 궁상맞게 살고 있을까가 더 컸던 청소년기였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고 다른 친구들 부모님보다 나이 들어 보이고 남루한 당신들이 부끄러워 은근슬쩍 거리를 두고 걷기도 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계셨다. 성인이 되고서 부끄러워하던 철없던 마음은 사라졌지만 당신들 건강 걱정보다 다 큰 자식들이 독립해서 먹고 살 걱정하시는 모습에 되려 화를 내기도 했다. 당신들처럼 힘들게 살지 말라고 대학까지 보내놨지만 딴 길로 빠지고 흥청망청 살았던 건 어쩌면 아끼기만 했던 부모님에 대한 반항이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 반항이 끝이 난 듯하다. 월급은 적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하는 쏭과 나처럼 궁상떨며 자라지는 않았으면 하는 호은을 보며 나야 어떻든 상관없다고 주말과 공휴일에도 일이 있으면 하곤 한다. 가장의 책임감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하는 부담이지만 의무감보다 사랑이라는 힘으로 이겨낸다. 어릴 적 부모님이 우리 형제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맛난 것, 예쁜 것, 좋은 것을 보면 아내와 아들 앞에 먼저 두곤 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저 웃음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평생을 공장에서 일하고 철근을 들며 일하셨던 당신들의 책임감을 지탱하는 원동력도 역시 의무감이 아닌 사랑이었으리라.


요즘 부모님과 통화하면 대화 말미에 사랑한다고 꼭 말하곤 한다. 아저씨가 된 아들이 사랑한다고 하면 질색하실 줄 알았는데 '나도 사랑해'라고 하시며 좋아하시는 걸 보면 왜 여태껏 안 하고 살았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분들이 짊어졌던 책임감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임감은 의무보다 사랑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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