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도전

by 드림위버
2001년 당시 유병목과 김봉수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 속에서 생각들이 뒤엉킨 듯 했다.


며칠 전 일이 문득 떠올랐다. (김)봉수와 내가 지원서를 쓰며, 영어가 서툴러 (주)봉수 형님의 전화번호를 대신 적어 넣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방출과 입단 소식을 동시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정말 운명의 장난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될까.


난 김봉수에게 너무 미안했다. 갑자기 찾아온 야구 기회에 얼마나 설렜을까.


봉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를 응원해줬다.


"축하한다."


그 한 마디에 고맙다는 말이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만약 봉수가 그곳에서 멋지게 던지고 돌아왔다면, 과연 나에게 이 기회는 남아 있었을까.


속으로는 백번이라도 고마웠다.


사실 봉수는 약혼자와 파혼을 했다. 미국 땅에서 야구선수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 예상치 못한 봉수의 행동에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가 짐을 싸고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린 것이다. 영어도 못하는 여자친구를 혼자 집에 두고 나와 하루종일 런닝하고, 캐치볼하고 했으니.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봉수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심지어 자신의 출퇴근 길을 내 출퇴근 길로 바꿔, 왕복 두 시간을 매일같이 운전해주었다. 왜 나를 위해서 그렇께까지 해준 걸까. 같은 야구인으로서 동지애였을까, 아니면 자기가 못 이룬 꿈 너라도 이뤄라, 그런 마음이었을까.


봉수의 진심 어린 응원 덕분인지, 나는 초반부터 의도치 않게 좋은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첫 경기를 1이닝 무실점으로 마쳤다. 중요한 건 타자들의 방망이가 공 아래를 헛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언터쳐블이었다. 감독도, 동료 선수들도 '이런 투수는 처음'이라는 듯 놀라워했다.


"You, closer."


감독이 날 마무리투수(closer)로 쓰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팀의 마무리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경기를 지켜본 두 봉수 브라더스도 격하게 축하 해주었다.


"오늘은 순두부 말고, 떡보쌈에 술 한 잔 해야겠다!!"


경기가 끝난 우리는 매번 가던 BCD(식당)에 도착해, 늘 먹던 순두부찌개 대신 보쌈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주변 지인도 몇명 불러 함께 축하 파티를 벌였다.


다음 경기에서도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세이브 상황에 올라가 1이닝을 깔끔하게 틀어 막았다. 볼넷이 하나 있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 구 한 구 더 신중히 던졌다. 공이 위-아래, 좌-우로 휘날리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는 데만 집중했다. 볼 끝이 워낙 지저분해 타자들은 제대로 된 타구를 만들지 못했다.


"You are a Major Leaguer, man."


팀 동료들이 '넌 메이저리거'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당장 메이저리그에 가더라도 한 이닝쯤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가 며칠 이어진 뒤였다. 나는 여전히 마무리 상황만을 떠올리고 있었고, 그날도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이름이 불렸다.


5회, 점수는 이미 2대 8로 벌어진 상황이었다.


몸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전력투구보다는 던지면서 몸을 풀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관중석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전력으로 던져!!!!!!"



그것도 한국말로.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디서 들리는 거야?' 하고 한 구를 던졌다.


그러자 또 다시 그러는 것이다.


"뭐하는 거야!!! 전력으로 던지라고!!!!!"



'아, 누구야.'


소리가 난 쪽을 찾았더니, 김봉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야, 지금 너 보러 온거야!!!!!!!! 이거 테스트야!!!!!!!"



그때서야 상황파악이 된 나는 유심히 관중석을 살폈다.


그곳에,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스피드건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의 스카우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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