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운명

by 드림위버
2001년 당시 훈련 중인 김봉수의 모습



그렇게 봉수는 롱비치 브레이커스 선수가 되었다. 난 떨어지고...


캐치볼 상대가 없어진 나는 또 다시 벽치기 훈련을 시작했다.


기회를 잡았어야 했는데... 봉수가 잘되길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가 봉수보다 못한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바로 제구였다.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안고 있었다.


고1 때 105km 밖에 안 나왔던 나는 스피드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제구가 좋아도 스피드가 없으면 프로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느린 공이 빨라질까만 고민하느라 제구는 신경쓰지 못했다. 단체 훈련을 마친 후 혼자 운동장과 체육관에 남아 엄청난 체력훈련과 뼈를 깎는 고통의 훈련들을 이겨내니 공이 빨라졌고, 고3 때는 전국에서 가장 빠른 140km대의 공을 던지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스피드에만 신경을 쓰다 놓친 것이 제구력이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내 발목을 잡는 문제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스트라이크를 던져야한다.'


공원 벽에 둥그런 원을 그려놓고, 원 안에 공을 꽂아 넣는 연습을 시작했다.


봉수가 원정을 떠난 며칠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을 던졌다.


사흘째 되던 날 자정이 다 돼서야 봉수가 집에 돌아왔다.


(똑똑)


"왔냐? 경기는 뛰었고?"


"내일 선발로 던지래. 같이 갈래?"


"오 좋지. (주)봉수형한테도 물어볼게"


내일이 드디어 봉수의 첫 등판 날이었다. 그것도 홈 관중들 앞에서 선발 등판이라니. 부러운 마음을 숨기느라 애를 많이 써야 했다.


"떨리냐?"


"생각보다는 긴장이 되긴 하네 ㅎㅎ 너도 알다시피 내가 두산에서 몇 경기 안 던졌잖아."


그러고보니 봉수는 이천(두산 2군)에서 던진 경기가 거의 없었다. 에이스 대접은 받았지만 1군 데뷔조차 못했고, 2군에서는 4년을 보내면서 뛴 경기가 다 합쳐도 20경기 남짓이었다.


그래도 에이스는 에이스였다. 어쨌든 메이저리그 출신 감독 앞에서 선발 등판하게 됐으니 나보단 나은게 팩트였다.


'독립야구도 못 뛰는 내가,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져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오전 김봉수와 나는 순두부찌개 한 그릇 뚝닥 해치우고, 주봉수 형님을 픽업하여 롱비치로 향했다. 선수가 아닌 관중이 되어, 봉수가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분명 봉수가 잘 던지길 응원하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그 자리에 봉수가 아니라 내가 서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결국 나의 이기적인 생각들이 봉수를 망친 것일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봉수는 선발투수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흐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향하던 공이 하나 둘씩 그 경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첫 타자가 볼넷으로 걸어나가고, 두번째 타자도 스윙 한 번 없이 볼넷으로 주자 1, 2루가 채워졌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자, 봉수의 표정도 굳어진 듯 보였다.


말 그대로, 최악의 흐름이었다.

세번째 타자와의 승부에서 포수가 공을 잡지 못해 폭투로 주자 2, 3루가 되었고, 안타 한 방으로 주자들이 전부 홈으로 들어와 모든게 끝이 났다. 단 한 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봉수는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봉수의 '패'로 경기가 끝났다. 나는 진심으로 봉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야, 처음부터 잘했으면 우리가 독립야구단에 있겠냐. 메이저리그에 있었겠지. 다음 경기 잘하면 돼."


봉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엑셀을 밟고 있었다.


차 안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주)봉수 형님의 전화기였다.


"헬로? 예스, 예스... "


통화가 이어질수록 봉수 형님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오케이. 바바이."


모두가 예상하는 그 시나리오였다.

김봉수의 방출... 고작 한 경기. 제대로 던져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다.

봉수는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이 운전만 계속했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헬로? 예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왓!!!!??"

형님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다.

전화를 끊고 잠깐 망설이다가 우리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병목이를 뽑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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