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네 집에 들어서자 비교적 넓은 거실이 눈에 띄었다. 주봉수 형님네처럼 이번에도 거실에서 자겠지 생각하고 짐을 풀려는데 봉수가 손가락으로 방을 가리켰다.
"작은 방 쓰면 돼."
주봉수 형님 집과 같은 투베드룸 구조였는데, 김봉수네 집이 훨씬 더 넓었다. 봉수는 부모님 지원이 넉넉해서 굶어 죽을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차도 심지어 크라이슬러를 렌트했으니, 순두부찌개를 먹을지 말지 고민하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봉수 덕에 크라이슬러 조수석에 앉아 캘리포니아 해안 도로를 누비는 호사를 한 번쯤은 누려봤으니 인생이 아주 불공평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봉수와 함께 코리아타운 인근으로 나가 야구 용품점에 들러 봉수의 글러브를 샀다. 봉수는 관둔지 1년 만에 다시 글러브를 끼는 것이라 나름 의미가 있었다. 어깨가 아파서 그만둔거라 고민이 많았을텐데, 나로선 벽치기만 하다가 봉수가 내 볼을 받아줄 생각을하니 이제서야 훈련다운 훈련을 하는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기약은 없었지만 봉수랑 매일 같이 훈련을 하게 되었다. 오전엔 공원에서 캐치볼, 점심먹고 산타 모니카 비치에 나가서 런닝. 매일 매일 반복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도전을 위해, 특별하진 않지만 다가올 미래의 특별함을 위해 하루 하루를 쌓아 나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현수막 하나를 보게 된다.
LONG BEACH BREAKERS OPEN TRYOUTS
사실 처음엔 저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차타고 다니다가 야구공이 보이길래 멈춰서 보게 된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주)봉수 형님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정도 차를 타고 코리아타운으로 가 봉수 형님을 태운 뒤,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롱비치 브레이커스라는 독립 야구단에서 공개 선발 테스트를 한다네"
봉수 형님이 기쁜 얼굴로 우리에게 뜻을 전달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것인가. 무조건 신청을 하자! 김봉수와 나는 마음을 먹었다. 당장 가서 신청을 하려니 아, 여권을 안 가져왔다. 준비물에 'Photo ID'가 필요했기에 우린 여권이 있어야 했다. 두 봉수 브라더스와 나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김봉수의 집으로 왔다. 롱비치까지는 코리아타운에서 1시간 정도 걸렸다.
우리는 Blair Field라는 곳에 도착했다. 애너하임 메이저리그 야구장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멕시칸 사회인 야구 경기장보단 훨씬 야구장 스러운 곳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신청서 종이 2장을 받았고, 봉수 형님이 우리 둘의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주었다. 봉수 형님이 제출을 하고 데스크의 직원과 몇 마디 나눈 뒤 우리에게 왔다.
"이번엔 딱 2명 뽑겠대."
봉수와 내가 선발되면 딱 좋을 거 같았다.
오늘이라도 당장 테스트를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캐치볼 하고, 러닝 뛰고, 그렇게 5일을 반복했다.
"요즘 이상하게 팔이 안 아프더라. 왜 그만뒀나 싶다니깐 ㅋㅋ"
봉수는 어깨가 아파서 야구를 그만뒀는데, 5일 내내 훈련하면서 통증 한 번 없이 전력투구를 했다.
변화구 각도 괜찮고, 얘가 지금 미국에 놀러온게 맞나? 싶었다. 그냥 봉수는 무조건 뽑힐 거 같았다.
문제는 나였다.
지난번 멕시칸 사회인 야구 팀에서 배불뚝이 아저씨한테 2루타 맞고 머리가 띵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 떨어지면 나는 이제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말똥말똥한 눈으로 밤을 꼬박 샜다.
아침이 되자 봉수와 나는 글러브를 챙겨서 트렁크에 실고, 차에 올라 타 롱비치로 향했다.
도착을 하고 보니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 200명정도 돼 보였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고작 2명이라니.
직원 한 명이 번호표 같은 걸 나눠줬고, 영어로 무슨 설명을 시작했다. 각자 포지션 별로 흩어져 수비를 보고,그 다음엔 타격, 마지막엔 투구였다. 순서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봉수가 나보다 먼저 투구를 했다. 공은 낮게 꽂혔고, 변화구는 각이 살아 있었다. 저런데 왜 그만뒀을까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내 차례가 되자, 또 다시 긴장을 했는지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제구는 생각보다 잘 됐다.
투구 내용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봉수 다음으로 뽑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KIM"
"(외국이름)"
하지만,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봉수는 합격했고, 나는 떨어졌다.
그땐 그게 마지막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