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 브라더스

by 드림위버

프로야구 역사에는 20여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은 기록이 하나 있다. 역대 최연소 프로야구 선수. 그 타이틀의 주인공은 만 16세에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한 프로야구 선수, '김봉수'가 갖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홈페이지


KBO 야구규약에 따르면 '구단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졸업예정 또는 중퇴한 선수 중에서 지명을 실시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고등학생 이상은 되어야 프로야구 선수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초졸' 선수였다.


봉수는 1979년생으로 나와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나보다 2년이나 먼저 프로에 입단했고, 계약금만 해도 1억 3천만원이었다. 고작 천만원 받고 입단한 나와는 결이 다른 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여기서 나랑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애는 김봉수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일종의 자격지심이었을까. 그냥 봉수가 싫었다. 봉수 역시 내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출발점이 그렇게 극과 극이었는데, 우리가 같은 위치에서 같은 처지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곳은 (두산 2군) 이천 야구장이 아니라, LA 한인타운이었다.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된 봉수와 낯선 미국 땅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어!!!?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노숙 생활 3일차에 접어드는 낮 시간에, 하필 봉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와 함께, 거지 꼴의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다시 땅바닥에 누웠지만, 막상 나를 아는 사람을 마주하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집으로 가자."


봉수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봉수를 바라보았다. 얘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그냥 지나쳐도 될텐데, 왜 하필 나였을까.


그날 이후로 봉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와 함께했다.

때로는 캐치볼 상대가 되어 주었고, 때로는 크라이슬러 운전석에 앉아 왕복 10시간이 넘는 거리를 함께 오갔다.


이 모든게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날 그곳에서 봉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미국 야구 도전기는 이번 편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봉수의 예비 신부와 함께 그 집에 얹혀 살기로 한 선택은 어쩌면 나에게 있어 '신의 한 수'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선택이 봉수의 인생에 어떤 파장을 남겼는지는, 곧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김봉수가 나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든 사람이었다면,

그 이후 이야기는 또 다른 '봉수'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주봉수'


바로 호텔 프론트 형님이다.

앞선 이야기에서 느꼈겠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분이다.


그동안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LA에서의 내 입과 귀가 되어 주신 분이다.

내가 어떻게 영어를 할 수 있었겠는가. 까를로스와의 대화도, 그리고 에인절스 스카우트와의 대화도, 사실은 모두 그의 옆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첫번째 도전부터 이 이야기의 끝에 이르기까지,

내 미국 야구 도전기는 봉수 형님으로 시작해서 봉수 형님으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왼쪽부터 나, 주봉수 형님, 그리고 김봉수


두 사람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돌이켜보면 묘하게 느껴진다.

이 자리를 빌어, 주봉수 형님과 나의 친구 김봉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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