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몸을 풀고 시작하려 했던 나는 양복쟁이 아저씨들을 보자마자 심장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첫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결과는? 공이 그의 옆구리를 정확히 때렸다.
"What the Fxxk, man?"
"Fxxk you!"
"Fxxxxxxxk!!!!!"
아주 난리가 났다.
하필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이 자리에서 상대 선수가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펄쩍펄쩍 뛰고 있으니, 이게 뭔가 싶었다.
다음 타자가 들어섰다. 공을 던졌는데, 이번엔 타자의 종아리에 맞았다.
"악!"
많이 아팠나보다. 소리가 크게 났다.
그가 죽일 듯이 나에게 달려오는 걸 우리팀 포수가 겨우 막았다.
'아, 망했다.'
여기저기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듣진 못해도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익숙한 장면이 눈앞에서 반복됐다. 저 멀리 서있던 스카우트가 스피드건을 집어넣고, 가방을 들고 떠났다. 두 달 전에 있었던 멕시칸 사회인야구 때랑 데자뷰였다.
경기가 끝나고 김봉수랑 함께 한인타운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주봉수 형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
그렇게 해서 또다시 방출을 당하게 됐다.
미국에 와서 사회인 야구 선수, 독립 야구단 선수, 그리고 메이저리그 테스트 2번까지. 3개월이란 짧은 기간동안 많이도 경험했다.
그럼 뭐하나. 전부 나가리?되고 더이상 야구를 할 곳도, 방법도 없었다.
지금처럼 아카데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유튜브와 같이 날 어필하고 알릴 수 있는 매개체가 아예 없었다.
결국 나는 파트타임(알바)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다.
어떤 날은 '호텔 벨보이'였다. 그 당시 벨보이란, 체크인을 한 투숙객들의 캐리어를 객실로 들어주고 팁을 받는 역할이었다. (주)봉수형이 프론트에서 투숙객을 받는 동안, 나는 그 짐을 얼렁 들고가 객실로 갖다 놓고 팁을 받았다. 보통은 건당 1불씩 받았고, 운이 좋으면 5불까지도 받았다. 공을 던져야 할 어깨와 팔꿈치로 가방을 나르는 게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돈이 쉽게 벌리는 거 같아 기분은 좋았다.
또 다른 날은 '한인 식당 주방 알바'였다. 닭도리탕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난 주로 닭머리를 자르는 담당이었다. 바쁜 날엔 하루에 100마리도 넘게 잘랐다. 어느 날은 꿈 속에서 닭 대가리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식은땀을 흘리며 깬 적도 있었다.
심지어, '길거리 파이터'까지 했다. 그 당시 엘에이 지역에서 아시아 인들에게 와서 '한 번 싸우고 용돈 벌이 한 번 해볼래?'라고 흥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번 할 때마다 200불을 준다기에, 혹해서 두 번 정도 나갔다. 가서 한 번은 이겼고, 나머지 한 번은 졌다. 다녀오면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한 번만 더 했다간 야구를 영영 못할 듯 싶어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봉수랑 하루도 안 빠지고 런닝도 뛰고 캐치볼도 하고 했다. 틈틈이 알바비로 헬스장도 끊어서 헬스도 하고 했다. 그렇게 한 두 달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에 출근해 프론트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손님도 안오고 많이 심심했는지 프론트 책상에 놓인 노랗고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집어 들었다. 한 두 장씩 넘기다 보니 빼곡히 적힌 상호명과 숫자들만 눈에 들어왔다. 딱히 눈길을 끄는 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열 장, 스무 장씩 대충 넘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익숙한 단어 하나가 시야에 걸렸다.
'Boston Red Sox'
(보스턴 레드삭스)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꺼져있던 내 카메라에 불이 들어온 듯 눈을 번쩍였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가슴이 뛰었다.
(p.s. 이번 화는 쓰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아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2일이나 늦어졌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신, 곧바로 다음 화가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