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플리즈

by 드림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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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김선우 (출처: cache.boston.com)


보스턴 레드삭스는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도 월드시리즈 우승만 5번을 한 최고의 명문 구단이었다. 전설같은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있었고, 중학교 선배인 (김)선우 형이 지금 거기서 뛰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형, 전화기 한 번만 쓸게요."


(주)봉수형 핸드폰으로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몇 번 가더니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Ray Poitevint office, How can I help you?"


"테스트 테스트!"


"Sorry?"


"아임 베이스볼 플레이어. 테스트 테스트!!"


그리고 전화는 뚝 끊겼다. 옆에서 보고 있던 봉수형이 어이가 없는 듯 웃고 있었다.


"그럼 형님이 전화좀 걸어주세요."


"이게 되겠어?ㅎㅎ 너무 웃긴데."


봉수형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전화기를 건네 받았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헬로?"


대충 '한국에서 온 야구선수가 있는데, 테스트를 보게 해달라'는 얘기였다. 근데, 1분도 안돼서 전화를 끊었다.


"뭐래요?"


"헛소리 하지 말라는데?ㅎㅎ"


"형님, 전화 한 번 더 해줘요."


"야, 이게 이런식으로 해서 되겠어?"


"형 어차피 이판 사판이에요. 그냥 전화 해줘요."


"심지어 여기 보스턴 레드삭스가 아니야. 그냥 개인 사무실 같던데?"


"보스턴이든 LA든, 야구만 할 수 있으면 돼요. 빨리 통화 버튼 눌러요 ㅋㅋ"


봉수형이 다시 전화를 걸어 유창한 영어로 '플리즈'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더니,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얼굴로 돌아봤다.


"잠깐 기다려보라는데?"


갑자기 침이 마르고 잔뜩 긴장됐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런지.


10초정도 기다리자 봉수형이 뭔가를 듣고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나에게 '빨리 받으라'며 전화기를 건넸다.


"여보세요?"


"누구냐 넌?"


"아, 안녕하십니까. 저 두산베어스 출신이고 야구 도전하러 왔습니다. 테스트좀 보게 해주세요."


"너 이름이 뭐냐?"


"네, 유병목 입니다."


"그래 병목아. 내 70 평생 스카우트 하면서 너같은 새끼는 처음봤다. 다짜고자 전화 하면서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모르겠다만, 이러면 안된다. 알겠지? 전화 끊는다."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가 뚝 끊겼다. 곧바로 전화를 다시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봉수형이 아쉬운 듯 웃긴 듯 미소를 머금으며 "어떡할 거냐"고 물어봤다. 난 아무말도 없이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나는 그 순간을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농담이 아니라, 거의 100통 가까이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101번째쯤이었을까. 수화기 너머에서, 아까 들었던 한국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저 테스트좀 보게 해주십쇼."


"야 됐고, 나는 여기 보스턴 레드삭스 아시아 담당 직원 박진원이다. 니가 누구라고? 다시 설명해봐."


그렇게 나는, 끊어질 뻔했던 내 야구 도전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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