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병목이니?"
"네 맞습니다."
"그래. 좀 어이가 없긴 하지만, 화이팅 해보자."
관건은 구속이었다. 150km를 던진다고 뻥을 쳤으니 말이다.
144km가 최고 구속이었던 내가 150을 던진다는게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젖먹던 힘이 남아서 1키로는 더 던질 수 있겠지만. 150이 나오는 건 영화에나 나올 얘기였다.
실제로 젖먹던 힘까지 다 써서 던졌다. 머릿속엔 오직 숫자 하나밖에 없었다.
150.
폼이 무너지든 공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깔끔한 폼도 아닌, 스피드건 위에 찍힐 93마일(약 150km) 이상의 숫자였다. 숨을 죽이고 온 힘을 어깨와 팔꿈치에 집중했고, 허리를 최대한 비틀며 공을 뿌렸다.
'제발 이번 한 번만...'
매 투구마다 그렇게 되뇌며 공을 던졌다.
던질 수 있는 건 전부 던졌고, 더 이상 짜낼 힘조차 남지 않았다.
그렇게 테스트는 끝났다. 박회장님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최고 구속은 92마일(약 148km)까지 나왔다."
와... 4km나 더 나왔다고? 미쳤네 정말.
"오늘 테스트는 여기까지다. 철수하고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
나는 떨어진 걸까. 너무 궁금했다. 150이 안 나왔으니까? 그런 생각 속에 전화만 바라보며 며칠을 보냈다. 도저히 참고만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사흘쯤 지나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혹시, 저 떨어진 건가요?"
"아니, 뭐 나쁘지는 않은데. 92마일까지 나왔고 공도 좀 지저분한 스타일이고 말이야. 근데 지금 다른 나라에 워낙 어마어마한 투수들이 많아서 너를 뽑아야 할지 말지 고민 중이다. 일단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2~3일 지나도 연락이 없자, 나는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 기다리라니깐."
"저 체류기간이 끝나갑니다. 한 달밖에 안 남았습니다."
"아 그래? 근데 네가 150이 안 나와서 너를 뽑겠다고 밀어 붙이기가 좀 그래."
"한 번 만 더 테스트를 보게 해주십시오. 이번엔 반드시 150 던지겠습니다."
"그럼 또 직원들 데려와야하고, 세팅해야하고... 네가 150 나온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 순간, 나는 무릎을 꿇었다. 전화기 너머라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이다. 바닥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흐느끼며 울었다.
"저 150 던질 수 있으니깐...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그때의 나는 정말 간절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간절함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때만큼은 달랐던 것 같다. 박회장님은 마치 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걸 본 사람처럼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2주 뒤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테스트를 보게 해줄게. 대신 이번엔 실망시키지마. 나도 상황이 난처해."
그날부터 지옥훈련이 시작됐다.
봉수와 나는 매일 아침 차에 올라 그리피스 공원으로 향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백 개의 공을 던졌다. 더 세게, 아주 아주, 세게 던졌다. 그렇게 던지는 날들이 열흘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테스트를 사흘 앞둔 어느 아침이었다.
새벽 7시, 어느 때와 같이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시간에 전화라니. 벨소리가 범상치 않았다. 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었는데, 테스트 3일 앞두고 새벽 7시에에 전화가?
따르릉~
아무래도 느낌이 쌔 했다. 뭐지 진짜.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주봉수 형님이었다. '설마 테스트를 못 보게 된건가?'
"여보세요? 네 형."
"야 병목아."
"네?"
"야 병목아."
'아 XX. 테스트가 물 건너갔나보다.'
"빨리 티비 틀어. 뉴스 틀어봐."
뉴스? 내 머리엔 테스트 밖에 없는데, 무슨 뉴스를 틀라는 거지? 비몽사몽한 상태로 TV를 켰다.
화면 속에는 빌딩이 하나가 불타고 있었다.
'뭐야 이거. 영화야? 다이하드 찍나?'
그런데 내가 티비를 켠 지 정확하게 1분쯤 지났을까.
화면 한쪽에서 비행기 한 대가 날아와, 불타고 있는 쌍둥이 빌딩 옆 건물에 '꽝!' 하고 충돌했다.
9.11 테러가 터진 것이다.
그날 아침, 모든 것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