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 어드바이저 겸 재미 대한야구협회 회장 박진원.
그게 그의 공식 직함이었다. 우리는 그를 박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어렵게 잡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는 작년에 두산에서 짤렸고요. 야구를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 미국에 왔습니다. 사회인 야구 팀에서도 있었고 롱비치 브레이커스라는 독립 야구팀에도 뛰었습니다."
말을 마치자 박회장님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퐈하하하하하"
날 신기하게 본 듯 했다.
"야, 그걸 어떻게 했냐. 근데 거기서 쫒겨난 네가 보스턴 테스트를 어떻게 통과하겠다는 거야? 보게 한들 네가 붙겠어? 너 구속 몇키로 나와? 150 나와? 나왔으면 두산에서 안 잘렸겠지."
그 순간, 나는 거짓말을 했다.
"150 나와요."
"너 진짜 150 나와? 그럼 두산에서 왜 잘렸어?"
나는 또 한 번 거짓말을 했다.
"코치한테 밑보여서 짤렸습니다."
사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라, 코치에게 밑보일 일도 없었다.
"그래? 네가 진짜 150이 나오면 테스트 보게 해줄게."
"아, 나옵니다. 믿어주세요."
"그래 알겠어. 그럼 너 몸 만들어져있어?"
"사실 저 알바하느라고 몸을 못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좀 주세요."
"얼마 주면 돼"
"2주만 주십쇼."
"알겠어. 2주 뒤에 글렌데일 그리피스 공원에서 보자."
그렇게 전화를 끊자 봉수형 폰으로 문자 하나가 날라온다. 테스트를 보는 운동장 주소였다.
모든게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통화한 사람이 스카우트가 맞나? 이거 전부 누가 꾸며놓은 거 아니야?
그저 2주 뒤, 아무 보장도 없는 약속 하나만 남아 있었다.
150이 나온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어렵게 붙잡은 기회였지만, 들통날 게 뻔했다. 무서웠고, 솔직히 겁이 났다.
다음날 아침부터 정말 미친 듯이 몸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봉수와 함께였다. 엘에이 한인타운 계시는 분들이 아침엔 삼계탕을, 점심엔 소고기, 저녁 땐 장어를 사주셨다. 어떤 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사우나 보내주기도 했다.
코리안타운에 계시는 한인 분들이 나를 밀어주셨다.
유병목을 보스턴으로 보내자!!
모두가 힘을 합쳐 2주 동안 나에게 특별 관리를 해주셨다. 전폭적인 응원을 받고, 드디어 2주가 됐다.
그 사람이 정말 와 있을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그리피스 공원으로 향했다. '혹시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 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곳에는 나 하나를 보겠다고 보스턴 레드삭스 관계자들이 열 명이나 와 있었다.
그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그저 전화를 한 번 했을 뿐인데. 심지어 내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불펜 뒤편에서는 카메라가 설치되고 있었고, 몇몇 스태프들은 두꺼운 노트북을 꺼내고 있었다. 전문 불펜 포수가 몸을 풀고 있었고, 나머지 몇사람은 팔짱을 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시선이 전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150.
이제까지 한 번도 던져보지 못한 숫자였다.
내 최고 구속은 144km.
6키로를 어떻게 올리지.
더 이상 뒤로는 갈 수 없었다. 오직 '앞으로'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