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 테스트에서 154km 를 던지고, 그렇게 내 인생이 바뀌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6개월짜리 비자가 끝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됐다. 하루하루가 1년처럼 길었다.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뛰었다.
9월 말에 한국에 들어온 뒤, 두 달 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다. 이번엔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조른다고 날 뽑아주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매일 매일이 불안했다. 두 달쯤 지났을 때, 이제는 정말 안 됐나 보다 싶어서 롯데 자이언츠 테스트를 보러 가기로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직구장에 직접 찾아가 구단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무 직원이나 붙잡고 말했다.
"테스트 좀 보게 해주세요."
어쩔 줄 몰라하던 직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스카우트 한 분이 나왔다.
"너, 뭐 하던 놈이야?"
"작년 겨울에 두산에서 방출됐고요. 두 달 전에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 테스트를 봤습니다. 구속은 154 나왔습니다."
"154가 나왔다고?"
"네. 지금 연락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없습니다. 테스트 보게 해주십시오."
그분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이 새끼 황당하네. 이런 식으로 절차 밟고 테스트 보는 경우는 없잖아? 야, 가. 집에."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전화번호라도 주세요."
명함을 하나 받아 들고, 그날 밤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 날,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테스트를 보게 해달라고.
며칠쯤 지나, 일주일쯤 됐을까.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테스트를 봤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곧바로 남해 겨울훈련에 합류하라고 했다.
나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며, 조용히 짐을 싸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는, 딱 미국 같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전화기는 안방에 있었고, 나는 부엌에 서 있었다.
그런데도 전화 벨소리는 집 안을 가르며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가슴이 먼저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잠깐 그대로 서 있다가, 천천히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병목이니?"
헉! 박회장님이다.
"나 박진원이다!"
"아, 예예. 안녕하세요."
"연락 오랫동안 기다렸지?"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잠깐 뜸을 들이더니, 그분이 말했다.
축하한다. 너,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다.
'아.....'
그 순간, 너무 행복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걸 흘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롯데에 다시 전화했다.
"보스턴 테스트가 합격이 돼서요. 남해 합류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민은 단 1초도 없었다.
한국에서 기반을 쌓고 갈 수도 있었는데? 미국에서 6개월 동안 버티며 도전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보스턴을 포기한다는 건 내 인생에서 말이 안 되는 선택이었다. 나를 보스턴에 보내기 위해 애써준 한인들, 봉수형, 파혼까지 당하면서 나를 도와준 우리 친구 봉수까지,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부모님과 형이 들어왔다.
"보스턴 레드삭스 통과했어."
"어머, 진짜?"
형도, 아빠도 너무 좋아했다.
나: 얘기는 안 했는데, 롯데도 됐어.
형: 야, 그럼 롯데를 갔어야지!
어머니: 병목아, 그냥 롯데로 가.
아버지: 니가 선택해.
나: 미국 갈게요.
지금 이 시점에 다시 생각해봐도 후회는 없다. 롯데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다 결과론적인 얘기다. 미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순간,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6개월의 드라마틱한 과정들, 그 간절함 속에서 얻어낸 이 기회는,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난 그렇게 미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