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by 드림위버

다음날, 밖으로 나가 보니 바닥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깨끗했다.


봉수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테스트가 9월 16일이 아니라, 17일로 연기됐다는 소식이었다.


D-5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봉수와 캐치볼을 하며,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며칠을 보냈다.


D-4, 3, 2, 1


온 나라는 불안과 분노, 그리고 슬픔에 가라앉아 있었고, 그 속에서 테스트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관건은 구속이었다.


스피드건에 93마일 이상이 찍히지 않으면, 나는 그대로 한국행이었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93마일이 찍히는 기분 좋은 상상과 지난 5개월간 겪었던 안 좋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키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D-Day


봉수의 크라이슬러를 타고 봉수 형을 픽업해, 또 한 번 글렌데일로 향했다.


'정말 와 있을까? 안 와 있으면 어떡하지?'


조수석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가는데, 대낮이면 늘 축구하고 농구하고 조깅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마치 TV에서 보던 사막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쌍 봉수 브라더스는 목숨을 걸고 같이 가주었다. 봉수가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나는 글러브를 챙겨 그들과 함께 테스트장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도 열 명 정도가 와 있었다. 익숙한 얼굴의 박 회장님과 스카우트 레이 포이트빈트씨도 보였다.


"야, 우리 큰맘 먹고 왔어. 150 안 나오면 나 잘린다?"


지난번에 148이 나왔지만, 사실 그것조차도 잘 믿기지 않았다. 150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마운드에 올라갔다. 호흡을 크게 하고 공을 던지려는 순간,



잠깐만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봉수였다. 박회장님이 무슨 일이냐는 듯 말했다.


"왜?"


"볼을 제가 받겠습니다. 전담 포수 말고, 제가 받겠습니다."


모르는 포수에게 던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받는 게 나한테 마음도 편하고, 친구가 받아주니 더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 알았어."


박회장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고, 그렇게 봉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포수 장비를 차고 내 공을 받게 됐다.


"병목아! 할 수 있어! 네 자신을 믿고 던져!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


봉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심금을 울렸다. 나는 호흡을 길게 하고 초구를 던졌다.


"나이스 볼!!!"


묵직한 글러브 소리와 함께 봉수의 고함이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서른 개의 공을 전력으로 던졌다. 어깨가 아픈지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목적은 단 하나. 150km.


나를 도와줬던 형들, 봉수, 봉수 형을 떠올리며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 던졌다. 그렇게 테스트는 끝났다. 봉수가 내게 다가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친구야, 수고했다."


악수를 하고, 우리는 함께 박 회장님과 포이트빈트씨 쪽으로 걸어갔다.


"고생했다."


"몇 키로 나왔나요?"라고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144 나온 거 아닌가?'

'3주 전에 148 나온 것도 스피드건이 고장 나서 그런 거 아니었나?'

'원래대로 144 나온 거 아니야?'


그때, 노트북 쪽을 바라보던 봉수 형이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야, 대박이야!! 대박이야!!!"


"대박? 뭐가 대박이에요?"


박회장님이 말하기도 전에, 봉수 형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외쳤다.


"야~~~~!!! 96마일 나왔다!!!!!!!!!!!!"


"96마일???!!! 뭐지!!?"


그러자 박회장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154km 나왔다."


오 마이 갓... 그냥... 믿기지 않았다.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멍했다. 봉수 형이랑 봉수는 거의 난리가 났다.


애너하임 스카우트 때도 144였는데, 4개월 만에 10km가 올랐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도 간절함이 만들어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한국 가 있어. 연락 줄게. 테스트 통과 여부는 구단 들어가서 회의해 보고 알려줄게. 한국 가 있으면 연락할 테니까, 고생했고. 일단 가 있어라."


박회장님은 그렇게 말했고, 나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 집 전화번호를 적어 드리며 작별 인사를 했다.


한인타운으로 돌아온 나는 봉수 브라더스와 양복집 사장 형님, 크레딧 회사에 다니는 형님, 그리고 봉수 형의 친구들까지 모두 모여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만의 작은 축제를 즐겼다. 그 자리는 사실상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을 앞둔 유병목의 축하 겸 송별회였다.


그 뒤 6개월 체류비자가 끝난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한 달이 1년 같은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에서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평생 잊지 못할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수 생활은 그렇게 막을 올렸다.

이전 15화2001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