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이모 Apr 22. 2022

너 그때 많이 아팠구나


똑 부러지는 이미지에 자신의 분야에서도 인정받는 30대 여성분이었다. 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겉모습과 외부적인 조건들. 십여 년 전에 나처럼 자신의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조금 느껴지는 정도.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 듯,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는 야무진 모습과 한번 무너지면 속절없이 무너져버리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잘 지내다가도 과거의 어느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동일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시간들.


과거의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그때의 나를 다른 이름으로 이름 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과거의 나는 '작은 사과'. 사과이모가 되기 전까지 작은 사과가 겪었던 시간들은 소설로 쓰자며 장편소설, 드라마로 쓰자면 16부작. 비단 나만 그러하겠는가.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그녀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과거의 그녀에게 이름을 붙여주자고 하자, 그녀는 그조차도 망설여했다. 다음 상담까지 이름을 지어오라고 했는데 결국 이름을 지어오지 못했다. 상담 중에 같이 정하기로 했다. 큰 의미 붙이지 말고 좋아하는 과일로 하기로 했다. 어릴 때 좋아했던 과일은? 저는 망고가 좋았는데 비싸서 잘 못 먹었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 그럼 망고라고 합시다. 작은 망고! 이제 마음먹으면 백화점 가서 사 먹으면 되는 망고.


과거에 작은 망고는 외로웠다. 슬플 때면 마구 먹었다. 작은 망고는 누군가가 미우면 그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미워했다. 작은 망고는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할까 봐 두려웠다. 미움받기보다 사랑을 갈망했던 작은 망고는 겉모습을 바꾸었다. 하지만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조차도 외면은 바꿔줄 수 있지만 내면은 바꾸어줄 수 없는 법. 작은 망고는 아름다워진 겉모습과 울고 있는 내면의 모습 사이의 거리감에 더더욱 외로워졌다.


"작은 망고가 많이 아팠네요...."

라고 말하자, 그녀는 이내 슬픈 눈이 되어버린다.


"제가 아팠다고요? 아프진 않았어요... 막 그렇게 아프진 않았는데 그냥 좀 슬펐던 거 같은데..."

아름다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누군가의 눈망울에 눈물이 천천히 가득 고이는 것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흘러내리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에 그녀의 명치끝 즈음에서 건드려졌을 그 무엇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나 역시 흘려보내지 못하는 과거의 시간이 있었다. 내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 혹은 아픔으로 시간을 채워가던 즈음이었다. 나 역시 그 시절을 그저 버텨나가고 있었다. 매일 까치발을 들고 걸어 다니는 날들이었다. 평상시와 다르게 한 번씩 화를 쏟아내기도 했고, 사람이 무서워서 도망치기도 했다. 이후에는 세상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나 혼자 무릎 꿇고 손들고 사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세월에 기대어서 보냈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의 나를 잊고 지냈다. 아니 그 시절은 꺼내어보지 않는 작은 서랍 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오래 흐른 후에, 이제는 작은 사과를 크게 미워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사랑하지도 못하는 밋밋한 감정 즈음이 되었다고 느껴질 무렵, 우연히 지인과 그때의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의 나를 담담히 드러내면서 좀 후련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안쓰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너 그때 많이 아팠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이었을까, 내 마음에 오래도록 지니고 있었던 무거운 짐이 갑자기 툭.. 하고 내려앉았다.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그동안 꽁꽁 막아두었던 눈물댐이 활짝 열리며 한참을 겉잡을 수 없이 내안의 눈물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았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명확하게 아플 이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아파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심했었나, 정도로 생각해본 적은 있다. 나를 객관화할 수 없었고,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에 그저 내 마음을 외면하며 살았다. 꾹꾹 눌러놓고 그나마 잘 견뎌내며 살아왔다.


"내가 아팠구나..."라고 생각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픈 줄도 모르고 아팠구나... 마음이 많이 아팠구나... 그 깊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이 나를 지나고 있었구나... 내 곁에 있던 사람들도 크고 작게 아파하며 그 시간을 건너가고 있었구나.. 그때서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 한 조각 맞추어지지 않던 내 인생의 어느 즈음에 제대로 된 조각을 끼워 넣은 느낌. 이제 더 이상 그때의 작은 사과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이제야 비로소 두 발을 뻗고 자도 될 것 같은 가벼움.


작은 망고와 작은 사과를 좀 안아줘 보아요. 우리.

그때의 작은 망고와 작은 사과로써는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많이 울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했던 행동이었잖아요. 적어도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은 없었잖아요. 그때 그 시절에 작은 아이들이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픔을 건너갔던 거잖아요...


많은 이들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멈추어져 있다. 흘려보내기 위해서는 작은 그 아이들을 안아줘야 한다.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져서 멈추어져 있는 고체 덩어리를 따스한 품으로 안아 흐물흐물한 액체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흘러간다. 시간이 어느 만큼 지난 후,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에 사라지고 진정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겠지... 하며 지금은 지금만큼의 지혜로 지금만큼의 품으로 나를 안아줘 본다.


울고 있던 작은 망고와 작은 사과는 서로를 안아준다.

그렇게 망고와 사과는 스스로를 용서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