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앞에서 날을 세우고 나를 움켜쥔 손을 날카롭게 할퀼 수 있는 배포를 가진 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 아니었다.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최소한 압정도 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어딘가에 박혀있을 만큼은 날카롭지만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올 수 없을 만큼 뭉툭했다.
나는 내가 ‘송곳’이 아니라 모서리만 있는 어떤 작고 지질한 존재라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더 분노하는 척했다. 회사에서 팀장이 인원감축을 위해서 사람들을 괴롭혀서 퇴사하게 만드는 것을 권유했다.
사실상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이런 부당하고 치졸한 지시에 꼼짝없이 엎드린 주제에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느니 말도 안 된다느니... 어설픈 분노를 가장해서 적어도 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바둑돌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나는 그렇게 비겁한 모서리를 가진 놈이다.
내가 붙잡고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박혀있을 수 있을 만큼만 나 스스로를 날카롭게 만든다.
그런데 그 송곳 같은 놈은 언제나 나 자신을 뼈저리게 깨닫게 만든다고.
이 와중에 잠시나마 존재는 했던 나의 작은 모서리가 고개를 들기에 나는 내일 그 눈을 보기가 두렵다.
2015년 8월 4일, 비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고 결국 아내 핑계를 댔다.
“아내가 노조 가입하면 이혼하겠다고 펄쩍 뛰는데 어떡하겠나..” 거짓말은 아니었다.
밥 먹으면서 툭 던져본 노조라는 단어에 아내는 얼굴을 시뻘겋게 달아 올리며 그렇게 반응했다.
하지만 아내는 정말 핑계에 불과했다.
아내의 불호령 전에 나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토끼 같은 자식이 2명이나 있고 봉양해야 할 부모님이 계시다. 정신이 번쩍 차려지게 만드는 내 뼈저린 현실이 모순되게도 나를 위로했다.
나에게는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바짝 엎드려야만 할 최소한의 변명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내가 느껴왔던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자괴감을 한순간에 무뎌지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현실이 있어. 너같이 어리고 잃을 것이 없는 놈은 모른다.
이 회사가 아니라면 당장 내앉아야 할 비참한 현실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살 길을 찾으려고 애쓴 것이다.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실 이게 내가 37년을 살아온 방법이었다. 나는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내 변명이 되어줄 현실을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아낌없이 욕을 퍼부었다. 그런 짓을 하면서 내 속이 편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속이 타들어갔고 나를 지켜보는 이 과장의 눈길이 나를 미치도록 괴롭게 했지만 나는 충실하게 나의 임무를 수행했다. 내가 오늘 하지 못한 것이라고는 이 과장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것 그뿐이었다.
2015년 8월 15일, 흐리다 때때로 맑음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이 과장을 외면한 채 남들과 다름없이 상사의 지시를 따른 지 10일째.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지없이 시키는 대로 임무를 수행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내 폭언을 다 들어야만 했다,
제발 좀 나가라. 이렇게 욕을 퍼부어본 적도 없고 남의 인격을 깎아내려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제발 내가 따르는 상사의 뜻대로 이 회사를 나가주면 좋겠다.
창고 옆에 있는 계단에서는 나와 똑같이 명령을 하달받고 나와 마찬가지로 납작 엎드려 복종한 과장들 덕분에 비정규직들의 울음소리만 울렸다. 나는 점점 짜증이 났다. 나도 욕하고 싶지 않은데 그들은 너무 끈질겼다. 어제는 죄책감 때문에 앉혀져 있던 감정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내가 화를 내고 부당하다고 외쳐야 할 상대는 이 지시를 내린 나의 상사인데 나를 불의 앞에서 괴롭게 한 것도 그쪽인데 분노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마트의 비정규직들에게 이 모든 분노의 화살이 돌아갔다.
마침 잘된 일인 것이다. 남에게 욕설을 하고 폭언을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늘 말을 더듬고 병신처럼 버벅거리는 일이 허다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과장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은 힘이 든다.
2015년 10월 2일 적당히 맑음
그동안 바빴다. 이제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매일 맡은 바 소임을 다했고, 그러한 노력에 부응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주 천천히 늦은 속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 명씩 버티지 못하고 떠나 주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양심을 판 대가로 고통 속에서 살게 되리라는 나의 염려는 이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내가 팀장에게 납작 엎드려 복종했던 것처럼 비정규직들은 나에게 더 낮게 더 허리를 숙여 엎드린다.
나도 당하는데 그들이 안 당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비록 뒤에서 어떤 송곳니를 드러낼지 몰라도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는다.
이곳은 이 과장 그놈처럼 꼿꼿하게 날 선 이빨을 드러내다가는 내팽개쳐질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서도 나에게 순종하는 것 말고도 꼬리를 치는 놈을 찾았다.
황준철. 적당한 선의와 적당히 입에 바른말에 충성을 다한다.
그놈도 이 회사에서 나가길 바라는 비정규직 중 하나지만 아직은 나를 위해 해줄 일들이 있다.
꽐라가 된 팀장의 대리를 도맡고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에는 내 땜빵을 해주고도 이만 퇴사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한 마디도 못하는 놈.
비정규직 노동법에 대해서는 한 치도 모르는 무식이니까 또 대충 얼버무리면 내 뜻대로 될 것이 분명하다. 적당히 모르는 척하고 중간쯤 비위를 맞춰주면 이 난장판은 내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 순간 날카롭지 않아 어떤 것도 벨 수 없지만, 버릴 만큼 둥글지도 않아
그저 적당히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공구가 되었다.
'송곳'이라는 만화책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만화책에서 제가 초점을 맞춘 것은 비정규직이 겪는 비참한 현실과 그들에게 주어지는 부당한 대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으니까요.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발치 물러서서 관전하고 있는 다수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불의 앞에 주먹을 불끈 쥐겠지만 사실 내 일이 아니라면 그 주먹은 그냥 힘없는 손바닥이나 다름없이 어떤 힘도 내지 못합니다.
저는 책에서 그저 여기저기 붙어 다니며 본인의 실리를 챙기는, 엑스트라 중의 엑스트라인 허 과장에 눈이 갔습니다. 그는 초반에 부당한 임무를 전수받았을 때 그 불의에 분노했고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머지않아 결국 상사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비겁하고 한심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현실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제가 어쩔 수 없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그저 사회생활에 능숙한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무조건 적으로 따르는 충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늘 부당하면 참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배워왔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먼저 닳는 곳은 모난 곳이라고 합니다.
허 과장처럼 점점 우리는 현실과 타협합니다.
송곳이라는 만화책을 보면서 주인공인 이 과장에 나 자신을 대입했을 때는 당연한 대우가 무참히 짓밟히는 실태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지시에 따르는 허 과장을 비롯한 다수가 지질하게 보였습니다.
나 역시 주인공처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외로운 싸움에 동참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송곳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다 정상을 정상이라고 말하고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한다면 세상에 불의는 없었겠죠.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그저 관전만 하고 그 누군가들이 이 세상에 다수이기에 우리가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허 과장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고 당장 내 주변의 세상을 지켜내는 비겁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초반에 가졌던 분노와 죄책감은 사라져 가고 점점 그저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인 모습에 더해서 적극적으로 악을 자처할 것입니다. 난 완전히 그의 입장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만화책 속에서 1~2줄도 안 되는 그의 대사를 바탕으로 변명을 구축했습니다.
내가 쓴 일기에서 타인을 이용하고 점점 악해지는 허 과장은 사실 저였던 것 같아요.
허 과장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만큼 무뎌지지 않고 송곳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외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하고 겁이 많은 인간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허 과장이 입장이 된 순간부터 그가 점점 죄책감에 무뎌져감에 따라 점점 그에 동화되어 그 인간을 이해해가고 있었습니다.
님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당신의 모서리를 계속 뾰족하게 갈아둘 건가요?
뭉툭해지는 것도 뾰족하게 갈아두는 것도 모두 내 몸을 깎는 일입니다.
둘 다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뭉툭해지면 어느 순간 이 고통에 무감각해지겠지만.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송곳'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를 자꾸 깎아내고 괴롭게 하는 세상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