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부산시민회관 주관의 음악회를 학교에서 단체 관람한 적이 있다. 매우 정확히 기억하는데, 곡목은 드보르작 Antonín Leopold Dvořák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였다. 연주단체는 기억이 안 나지만 지휘자는 강수연 님인 건 확실하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좀처럼 없었던 문화적 혜택 덕분인지 매우 들뜬 상태로 즐거워 보였다. 웅장한 1악장이 시작되고 지휘자의 휘몰아치는 역동적인 제스처가 곡과 찰떡같이 어울렸다. 넋을 잃고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1악장이 막 끝났을 때였다. 지휘봉이 멈추자마자 청중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자기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순간 어리둥절했다. 분명히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은 전체 4악장 구성이다. 따라서 배운 바로는 전악장이 완주되어야 박수를 치는데, 워낙 다이내믹한 곡이고 1악장만으로도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이니 박수 치는 것도 한편으로는 무리가 아니긴 하다.
그런데 굵고 짧게 박수를 쳤다면 모를까.
3학년만 한 반에 60명에 이르는 열두 개 반 전교생들은 물개박수에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쉽사리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었고, 모르긴 마찬가지였던지 일반 청중들까지도 이젠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지휘자가 당황한 건 물론이고 연주단원들도 망연자실이다. 이 놈의 박수가 언제 끝날지 뒤 돌아보며 마냥 기다릴 뿐이다.
시간이 지나 2017년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곡가 브루흐 Max Christian Friedrich Bruch 바이올린을 위한 스코틀랜드 환상곡이었는데, 1악장이 끝나자마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협연자는 아예 청중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당황한 지휘자만 아직 아니라는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건 예견된 시작에 불과했는데, 인터미션 후 브람스 Johannes Brahms 교향곡 4번 1악장이 마치고 연달아 2, 3악장을 끝낼 때도 박수가 나오려 하자 지휘자는 오른손엔 지휘봉을 들고, 왼손으로는 뒤로 황급히 박수를 치지 말아 달라는 신호를 동시에 보냈다.
사실 이날 2층 관람석엔 한낮에 실컷 놀고 흙냄새, 땀냄새 가득한 중-고등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있었다. 인솔교사가 있었지만 공연에 대한 사전 이해나 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1층 관람객의 불만과 짜증이 공연 이후 사무실로 여러 차례 언급되었고, 공연 담당자는 일일이 사과하기에 바빴다.
악장 간의 박수에 대한 갑론을박은 정도를 넘어,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위의 사례처럼 클래식을 안다 모른다를 떠나 저런 상황이 흔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다.
연주에 큰 감명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박수가 나온다거나,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휘자나 연주단체라면 다르겠지만, 악장마다 따박따박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향해 쏘아보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휘자, 협연자도 분명 있다. 이럴 경우 악장 간의 박수는 연주자와 관객과의 ‘암묵적인 약속’으로 치지 않는 쪽이 서로에게 더욱 성숙한 배려일 지도 모른다.
클래식의 본고장이라는 유럽의 경우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도 음악을 듣고 감명받거나 흥이 났을 땐 악장 간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최근에 보이는 공연장 영상물이나 라이브 스트림에서도 악장 간에 박수를 치는 것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그런 부분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곡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인데 3악장 직후 박수가 안 나오면 감탄할? 정도다. 3악장 코다에서 모든 악기들이 점차 정점을 이루다 종결로 이어지며,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지휘자의 제스처까지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박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이 끝나고 (출처: TV예술무대 YouTube)
고작 1분짜리 화면에서 보면 정명훈 지휘자는 3악장이 끝나자 예상했다는 듯 웃으면서 박수 체스처를 하며 분명 아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경우 지휘자 생각에서는 각 악장이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흐름을 가져야 몰입감과 완성도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데 흐름이 깨지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작곡가가 악장 첫 페이지마다 '박수를 치던 안치던 상관없음'이라고 써준다면 모를까.
그리고 이런 상황과는 약간 다른 경우도 있다.
2024년 4월 18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한 여성 지휘자 데뷔가 있었는데, 지휘자 김은선 님이 객원지휘자로 포디엄에 서게 되었다는 기사였다.1) 그리고 인터뷰에서 한 가지 재밌는 부분을 읽었는데 바로 악장 간의 박수였다.
음악에 집중하느라 정확한 반응은 모르겠지만, 악장 간 박수가 계속 나왔어요. 마지막 악장까지 끝나고 박수치는 게 룰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주가 괜찮으니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베를린 필하모닉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른 지휘자 김은선 (출처: 베를린 필하모닉)
이들은 클래식을 모르는 이들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주체하지 못하고 악장마다 박수를 친 걸까. 아마 아시아에서 온 실력 좋은 여성 지휘자가 궁금해서, 그리고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기 위해 악장 간 박수를 쳤을 지도 모른다.
악장 간의 박수 문제는 여전히 깻잎 논쟁이다.
어떤 이는 시대적, 문화적인 예를 들어 문제없다 하는 반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은 공연장에서 자신만의 기분을 방해받는 입장에선 불편하다는 것도 이해해 줘야 한다.
감정의 표현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문제 삼는 것은 논외다. 하지만 한 번의 연주회를 위해 힘들게 준비해 온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달갑게 화답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내가 젓가락을 들고 상황에 따라 액션을 취하는 깻잎에 대한 결론이다.
1) 아시아 최초 여성 객원 지휘자. 아시아인이 객원 지휘자로 발탁된 경우는 앞서 정명훈 지휘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