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쿨쿨,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잘 잘 것이다-
세 살 터울의 큰누나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간 다음날, 나도 그랬다. 갑작스러운 임종소식에 서둘러 본가에 도착했지만 이미 차갑게 굳어서, 늘 자고 있던 모습으로 누워있는 누나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다. 장애인으로, 평생을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사셨던 누나, 하지만 나는 울고 있던 가족들과는 달리 그저 덤덤히 누나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새벽을 보내면서 이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죽은 이에 대한 번거로운 절차들을 차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19를 부른 지 얼마 후, 금세 가까운 병원에 도착한다. 깊은 새벽이기에 차들이 거의 없어서인지 앰뷸런스는 요란할 필요가 없었다.
명확하고도 객관적인 죽음을 증명해야 하는 첫 번째 순서는 건당 얼마로 책정된 검안의의 사망확인이었다. 더불어 고인의 이름을 평소에는 잘 적지도 않다가 죽고 나서야 오히려 더 많이 썼으며, 알아듣기도 힘든 깨알같은 약관들의 빈칸을 채워가야 했다.
이제는 본격적인 장례절차가 기다린다. 한마디마다 따라붙는 구체적인 숫자의 금액들. 그때만큼 또렷하게 들릴 수가 있을까. 가격에 따른 빈소의 크기, 종교에 따른 장례형식, 장례를 도와준다는 누군가의 준비된 친절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어색한 목례와 또다시 반복되는 장례절차의 설명, 그리고 자꾸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갖가지 항목에 따른 비용들..
어둠이 옅어지고 4월 말의 공기가 그다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을 무렵, 나는 상복으로 갈아입고는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잠시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졸릴까 싶어 라디오를 켰다. 볼륨을 높이자 새벽부터 흘러나오는 건 내 의도와 상관없는 최신 걸그룹 노래였다. 평소 같았으면 제대로 외우지 못한 가사로 흥얼거렸겠지. 주파수다이얼을 돌리는 것조차 귀찮아지자 벌써 집에 도착했다.
방 안으로 들어와 내가 먼저 한 일은 베개를 두어 번 툭툭 쳐서 도톰히 세운 후 잠깐이지만 편히 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3시간 정도를 정말 편하게 잤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지난 새벽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했을 때에도 아이가 어렸었기에, 돌보아야 함을 핑계로 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는 다시 잘 잤다. 물론, 상중에는 이틀을 꼬박 뜬눈으로 보냈지만.
부모님, 혹은 멀지 않은 시간에 떠나게 될 가까운 이들, 갑작스러움이 아닌 어느 정도 과정을 가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그때도 나는 잘 잘 것이다. 그래야만이 더 힘껏 슬퍼할 수 있고, 마지막에는 제대로 이별할 수 있으니까.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고 23일은 큰 누님이 돌아가신 기일이 되었다. 예전에 KBS ‘동행’에서는 장애인의 날 기획으로 ‘나의 꿈, 나의 엄마’편을 통해 장애를 앓던 엄마가 낳은 같은 장애 아들에 관한 얘기가 나왔었다. PD가 중간에 엄마에게 아들이 어떤 존재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아들에게 되려 되묻자 미소를 띤 아들은 “보석? 보물?”이라고 답했다. 엄마와 같은 장애를 가져서인지 자신의 시작과 끝은 엄마라며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고, 오히려 자신을 너무 잘 키워주셨다고 말했다.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모두들 가지고 있을 최고의 보물들을 생각하니 문득 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