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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아이, 닫힌 교문 끝에 찾은 학교

1부(가짜이민)

by 김미현


이민 준비의 핵심은 늘 학교였다.

아이가 다닐 교실을 직접 확인하는 것,

그게 우리가 독일까지 날아온 가장 큰 이유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라덴부르크(Ladenburg).

마을은 고즈넉했고 풍경도 예뻤지만,

학교는 굳게 닫혀 있었다.

교문 앞에 서서 허탈하게 웃던 우리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다음은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나는 은근히 기대가 컸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곳이었고,

성에 올라 도심을 내려다보며 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됐다. 여기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아들은 교문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여긴 내 학교가 아닌 것 같아.”


들어가 보지도 않고 결론을 내려버린 아들의 말에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곧바로 철수했다.



다음날, 마인츠(Mainz)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학교 탐방에 나섰다.

첫 번째 학교에서는 교문 앞에서 멈춰야 했다.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다가와 방문이유를 듣더니 딱 한 줄로 잘라 말했다.


“정원이 다 차서 더 이상 신입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짧고 단호했다. 순간, 마치 경기 시작도 못 하고 퇴장당한 선수 기분이 들었다.


괜히 서운했다.

지금은 독일 특성이란 걸 알지만, 그때의 나는 “참 매정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였다.

아들은 돌아 나가는 길에 바로 말했다.

“나도 어차피 여기 마음에 안 들어.

여기 오라고 해도 내가 안 와.”


그래. 그게 너다운 거지!


나도 그렇게 내 속을 그대로 말하면

다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참 좋겠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마인츠의 한 게잠슐레(Gesamtschule)였다.

교문 앞에는 큼지막한 글씨 조형물이 서 있었다.


“Willkommen(환영합니다.)”


이번엔 달랐다.

교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못 들어오게 막는 사람도 없었다.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학교는 마치 대학교 캠퍼스 같았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학생들이 자유롭게 떠들고,

창문에 매달려 장난도 치고 있었다.

내 눈에는 다소 위험해 보였지만,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다.

히잡을 쓴 여학생들도 있었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민족 학생들이 있구나. 다행이다.’


아들은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용기를 내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0층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는 선생님이었다.

백팩에 반바지, 헐렁한 티셔츠, 캡모자 차림이라 나는 학생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차림으로 학교에 나타난 교사는 아마 교장실로 바로 불려 갔을 것이다.


그는 교실과 휴게실, 고학년 건물까지 안내해 주며 악수까지 청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

“우리 학교는 아직 신입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몇 주 뒤 신입생 설명회가 있으니 꼭 오세요.”


순간, 잠겨 있던 마음이 철컥— 하고 열렸다.

‘여기다!’ 드디어 찾았다.

아들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여기 마음에 들어. 학교도 크고, 운동장도 좋아.”

그 한마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기분으로 운동장을 돌던 중,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자전거를 끌던 여성 교직원, 딱 봐도 기숙사 사감 같은 인상이었다.

우리가 왜 왔는지 묻길래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물었다.

“방문증은 받으셨나요?”


아니라고 하자,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바늘로 찌르면 종이 가루가 흩날릴 듯한, 무표정한 얼굴.


순간 나는 ‘내가 엄마로서 너무 준비 없이 부딪히고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에 심란해졌다.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던 그날, 우리는 결심했다.

“이 학교 근처에서 집을 구하자.”


계속된 실패 끝에 마침내 만난 가능성이 우리의 다음 행보를 결정지었다.

불안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우리는 이 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독일이민 #독일학교 #학교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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