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성과 별똥별
대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난생처음 가본 적 없는 부산이라는 곳은 많이 달랐다. 사람들이 쓰는 언어조차도 같은 한국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억양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과 기숙사에 짐을 넣기 위해 그때 처음 부산을 찾았다. 점심을 먹은 후 나 혼자 남겨진 기숙사에는 정말 아무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정말 내가 열심히 얻어낸 결과가 결국 대학교 입학 증서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연고에서 계속 자라 매 해 똑같은 친구들을 보며 자란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소심했고, 묻는 물음에는 단답이었다. 이제 대인 관계가 스트레스로 찾아왔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신입생들은 서로 친해 보였다. 같은 고등학교 또는 중학교를 졸업했거나, 서로 아는 사람을 통해 친해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런 것조차 당연하게 없었다. 그리고 말주변 또한 없었다.
연고 지역에 비해 부산 지역 아이들은 문화도 다른 것 같았다. 친하지 않아도 가끔은 나에게 지역 비하 발언을 장난식이었을 수도 있지만 하기도 했다. 지역 비하 농담을 듣고 살면서 가장 많이 초라해졌다. 지역으로 비하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연고를 떠나오게 된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주변에서 말했던 무연고지에 가면 고생한다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대학교 공강 시간이 되면, 친구 하나 없는 나는 혼자 기숙사에 들어갔다. 하하 호호 떠들며 서로 얘기하면서 대학교 정문 쪽으로 내려오는 신입생들과 반대로 나는 정문에서 가장 멀리 있는 기숙사를 향해 갔다. 이 생활이 며칠을 반복하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기숙사에 가던 중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기숙사에 들어가 다시 마저 울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힘들다고 토로했다. 통화로 죽고 싶다고 말을 했다. 어머니도 화가 많이 나셨다. 그냥 그만 다니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냥 나는 통화를 끊고 잠시 기숙사 주변을 돌아다녔다. 사회의 첫걸음을 딛은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나는 또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죽고 싶었는지... 여러 생각들이 기숙사 침대에 걸터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룸메이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너 어디 있냐고 찾으시던데?"
"나 잘 있다. 내가 연락할게"
순간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화를 내셔도 아들을 걱정하셨던 것 같다. 정말로 죽은 지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나는 점점 외로움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려만 해 보였던 신입생 무리들도 서로 각자의 길로 나눠지기 시작했고, 나도 어느새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별 다른 문제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니 나는 알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교에 들어오면 과팅, 축제, 밴드부라던가 그런 로망들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대학교라고 하면 그저 고등학교의 연장선으로 공부만 하면 되는 곳인 줄 알았다.(물론 고학년은 그게 맞았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몰랐다. 꿈이라는 게 너무 모호했던 모양이었다. 사전조사도 말이다.
같은 지역에서 고등학교 혹은 중학교를 같이 졸업했던 친구들 얘기들을 본가에 갔을 때 전해 들었다. 나와 같은 성장통을 앓았던 친구들도 많았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많았다. 일부는 자퇴했고 그 일부는 자기 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자퇴한 나머지는 길을 잃고 말았다.
같은 지역에서 자라고 성장했지만 길이 나눠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슬펐다. 서로 웃으면서 공을 차기도 했고, 온라인 게임을 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추억들이 있었는데 누군가는 길을 잃었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