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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Apr 26. 2024

6화. 냉탕과 온탕 사이

수확의 날

수능 전 날, 긴장돼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동안 해왔던 것대로만 하자고 다짐하며 이른 시간에 잠을 억지로 청했다. 그리고 나는 잠에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자기 집에 초인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집 전체를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나를 깨우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첫 번째 초인종에는 잠이 온전히 깨지 않았지만, 두 번째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온전히 깨어버렸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그리고 나는 새벽 2시에 잠이 들었다. 자려했던 시간보다 5시간은 늦춰졌다.


수능 당일, 그렇게 아침에는 컨디션이 엉망인 채로 수험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동안 불행은 나에게 늘 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1년 간 준비했던 날 또한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요행을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나에게는 모든 상황이 요행이었나 보다 싶었다. 죽다 살아난 게 살아있어서 요행이었나 싶기도 했다. 남들보다 안 좋은 상황에서 시험을 보다 보니 좋은 결과 따윈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로 계속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고, 계속 머릿속을 지배했다. 온 세상은 조용해졌고 내 몸에서 들리는 높은 주파수의 삐 소리가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시험은 진행됐다. 내가 무엇을 체크했는지 어떻게 풀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그리고 온 기력을 쏟았는지 기진맥진한 채로 저녁이 돼서야 고사장을 나올 수 있었다. 


컨디션이 엉망인 채로 시험을 보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가채점을 해보니 엉망이었다. 과학 탐구 파트에서는 문제를 건너뛰고 풀었던 부분도 존재했다. 늘 자신 있었던 과학탐구마저도 한마디로 밀려 쓴 부분이 있었다. 당장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죽음을 각오하고 버텼던 1년이라는 시간을 잡지 못했다. 내가 쏟아부은 노력 따위는 손 틈 사이로 빠져나온 모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멘탈이 나가버렸다. 


수능이 진행되기 전, 수시에서 서울 공립대 1개(A 대학-1차 합격), 타지방 국립대 1개(B대학-예비 55번), 연고 지역의 지방 국립대 1개(C 대학-최초 합격)의 전형을 진행했다. 하지만 B 대학을 제외하고는 아무 대학도 가고 싶지 않았다. 


A대학은 선택하지 않은 이유로는 돈이었다. 지방 사람이 서울이라는 장벽에 막혔다. 지방에서 살아가는 비용과 서울에서 살아가는 비용은 차이가 클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는 나를 지원해 줄 여력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학업과 학비 충당을 동시에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C대학은 집에서 차로 40분이면 도착하는 연고가 있는 지방 국립대이다. 내가 고향에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점은 하나였다. 탈출만이 답이 다였다. 그 이유로는 지역 사회 자체가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인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폐쇄적이었을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안 다는 점이 싫었다. 그리고 같은 C대학을 지원하는 친구들을 보면 아무런 꿈이라는 게 없어 보였다. 나 또한 이냥저냥 전전하다가 학교를 간다면 그저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았다.


 B대학은 차로 4시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지방의 대학교였다. 멀리 움직여 아무도 모른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예비 55번을 받았고 그 전년 기준으로는 예비 56번까지 합격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전년 합격 번호 대비 여유롭지 않은 숫자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주변 의견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비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주변 의견과 불확실성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B대학을 합격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집에다가 재수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다시 또 1년을 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내 동기 부여는 우울증이었으니 말이다. 집에서 다시 돌아온 답변은 "재수는 안된다" 였다. 시간이 지나가고 우울증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고 모든 시선이 향하는 곳에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돈이라는 게 참으로 야속하게 느껴졌고 세상은 나에게 시련만 준다고 생각했다. 예비 합격 전화를 기다려 보는 것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B대학의 예비 1차 기간에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예비 2차 또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예비 3차 기간이 되었다. 밤 8시쯤 되었을까, 어두컴컴한 겨울 하늘은 하늘만 봐서는 몇 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핸드폰은 울리기 시작했고, B대학 입학처에서 전화가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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