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

by 윤아 선생님

3월에는 누구든 윤아를 만나면 인사보다 걱정을 먼저 했다.

“윤아 선생님! 프로 민원러 맡았다면서요. 어떡해. 괜찮으세요?”

그때마다 윤아는 ‘교실이 너무 잘 돌아간다’고 대답했다. 4학년 처음해보는데 4학년 너무 좋은 거 아니냐고 내년에도 4학년 할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웃는 윤아의 얼굴을 보고서 동료교사들은 같이 웃었다. 그리고 나서 각자 자신의 새로운 학년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윤아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도 이럴 때는 친구 같다고 느껴졌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화창한 날이었다. 교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네, 4학년 2반입니다.”

“윤아 선생님, 2반이 학생수가 제일 적죠? 전학생 2반으로 보냅니다.”

윤아네 반으로 올라온 아이를 보고 윤아는 참 멀끔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동그란 눈에 뽀얀 피부를 가진 아이는 제법 큰 키였고 눈에 띄게 비싼 브랜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함께 온 아버지는 윤아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행정실에 책상과 걸상을 하나씩 더 부탁해서 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름을 물었다.

“서은우예요.”

말끝을 흐리지 않는 대답에 윤아는 은우가 벌써 마음에 들었다. 은우는 키가 커서 그런지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도 눈에 띄었다. 수업 듣는 자세만 봐도 공부를 잘할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은우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였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축구는 잘하냐? 달리기는 잘하냐?’ 물으며 전력을 탐색했다. 짝이 된 아이가 은우를 잘 도와줘서 그런지 같이 보드게임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밖에 나가서 놀기도 했다.

‘전학생이 와도 역시 우리 교실은 잘 굴러가네’

윤아는 요즘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의지할 수 있는 동료, 착한 아이들, 경력이 쌓이면서 생긴 여유까지. 특히 올해는 수업을 할 때마다 자신의 경력을 실감하곤 했다. 윤아가 준비한 수업 자료는 백전백승이었다. 수업 내용을 설명하면 '아하!' 하는 소리가 들리고 질문을 하면 너도 나도 발표를 했다. 어쩌다 게임이라도 하는 날이면 지락실못지않았다. 그리고 오늘 준비한 활동을 모두 마치자마자 딱 쉬는 시간 종이 울린 지금, 윤아는 확신했다. 교직 인생의 봄이 찾아왔다고!


윤아는 온책 읽기가 국어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부터 아이들과 열심히 책을 읽었다. 아이들에게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게 하면 처음에는 딴짓하느라 어디까지 읽었는지 헤매던 아이들도 곧 이야기에 빠져든다. 하나의 이야기에 모두가 몰입하는 순간,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책에 집중해 있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윤아는 참 좋았다. 온책 읽기가 좋아질수록 윤아는 더 좋은 이야기를 찾았다. 올해의 책은 <위풍당당 여우꼬리>였다. <아몬드>를 읽고 나서 다음 온책 읽기 책은 무조건 이거다! 찜해 놓았었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로봇처럼 더듬더듬 읽는 아이들이 있다. 심지어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기계도 더듬더듬 말하지 않는 세상인데.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읽지 못하는 아이는 글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할 확률, 학습에 대한 자신감이 낮을 확률이 높다.

"내…가…괴, 괴물…이 됐….다…고….고백할…수…는….없…었다."

지금 읽고 있는 아이가 딱 그럴 것이다. 윤아는 눈을 들어 누가 읽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평화였다. 책을 읽는 평화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오늘 체육 선생님이 아파서 못 오셨다네. 대신 너희 가가볼 알아?”

“네!!!” 이럴 때는 몰라도 일단 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을 4학년들도 아나보다.

“혹시 모르는 사람 있을 수도 있으니까 방법 설명해 줄게.”

가가볼은 피구와 비슷하다. 공을 피하는 게임이다. 책상으로 벽을 만들어 한정된 공간에서 하는 게임이라서 피구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박진감 넘친다. 한창 게임이 진행되고 있을 때 먼저 탈락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온 한 아이의 목소리가 유독 올라간다.

“야! 너 뭐 하냐! 뛰라고! 아니! 제대로 뛰라고! 아씨 진짜 못하네”

윤아는 놀랐다. 은우가 저렇게 말할 줄 아는 아이였나? 전학 온 이후로 모든 면에서 모범생처럼 보이던 아이가 가가볼 때문에 갑자기 돌변했다.

“야! 이평화! 좀 뛰라고! 더럽게 못하네”

은우가 유독 평화에게 얄짤 없다. 은우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평화가 답답해 죽겠나 보다. 주로 조용히 도망만 다니던 아이인데 어쩌다 보니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평화 자신도 곤욕스러워 보였다. 결국 평화는 공에 맞았고 은우와 평화네 팀이 졌다. 윤아는 평화에게 괜찮아. 열심히 했어. 말해주었지만 평화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나서 자리에 앉은 윤아는 평화와 은우에 대해 생각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혼자 책을 읽던 평화, 전학 온 날부터 반에 잘 섞여 들던 은우, 국어 시간에 굳은 표정으로 더듬더듬 글을 읽던 평화,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집중하던 은우, 공에 겁먹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평화, 유독 평화에게 가차 없이 소리치던 은우, 그리고 그런 은우에게 한마디 받아치지 않는 평화.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벚꽃이 다 져버린 것을 발견했다. 윤아는 아쉬운 마음에 초록 이파리가 돋아난 벚나무 가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올해 봄은 유독 날씨가 맑고 비도 오지 않아서 하얀 꽃이 나무에 가득 피어 있었다. 출퇴근 하며 만개한 벚꽃을 보는 것은 윤아의 큰 즐거움이었다. 너무 예쁘지 않냐고 호들갑을 떨면 K는 나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했었다. 윤아보다 몇 살 어린 K의 싱드렁한 눈빛을 보면 진짜 그런가 생각했었다.

“봄이 너무 짧다.”

윤아는 아쉽게 중얼거리다가 컴퓨터로 눈을 돌리고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내일도 끝내주는 수업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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