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혹은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그것이 고민이로다.

by 훈댕

회사에 입사하고 작성한 제안서 작업.


그저 한 문장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껏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흰 종이였다면 너덜너덜해진 나머지 구멍이 생겨 옆 사람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작문 실력이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느낀 건 그 후로부터이다. 평소에는 글쓰기에 무심했던 내가, 이제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한 개 보내더라도 맞춤법이 맞는지 꼭 구글에 검색해본다.


문서 작업은 업무 특성상 절반 이상이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하며, 그들이 요구하는 장표를 PC의 키보드 부속품에 빙의되어 무한 반복으로 문서를 찍어낸다. 확실히 이 업계에서 오래 생존하려면, 문서 작성 능력과 언변이 뛰어나야 우수한 핵심 인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단지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남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기 원하기에 글을 쓴다. 사람은 이성과 감성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하지만, 내 저울은 균형을 지키지 못하고 감정을 향해 더 기울어져 있다. 그러기에 조금 더 글로 남겨 감성보다 이성으로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욱 생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차곡차곡 쌓이듯, 내 고민거리들도 누적되어 가고 있다. 어제 했던 고민은 오늘은 더 이상 모래알 속에 파묻혀져서 더 이상 안 보인다. 풍선처럼 부풀어 버린 고민은 바늘에 찔렸는지 졸아버렸다. 어제의 고민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고민이다. 오늘은 또 새로운 고민거리가 내 목을 조여온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민들이 글의 발자취를 남기면, 감성으로 뒤덮인 고민들이 이성이라는 보호막 아래 조그나만 새싹들을 키워간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나는 죽지 전에 나의 이름 석자가 들어가 있는 책을 기필코 출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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