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한 레몬의 아로마와 과즙이 풍부한 산미에서 주는 여유란
늦었다고 생각할 때 너무 늦었다. 그러나 그때라도 시작을 안 하면 더 늦어진다.
내가 만든 내 인생 좌우명이다.
인생을 다시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항상 느렸다. 공부도 운동도 다른 또래보다 뒤처졌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피아노, 오보에, 베이스기타 여러 악기를 배웠다. 다만, 재능이 없어서 그런지 항상 실력이 제자리였다.
어느 순간 흥미가 떨어졌다.
중학교 때 비트박스와 브레이크댄스가 유행했다. 신나고 빠른 템포가 주는 즐거움이 좋아졌다. 그 템포에 맞춰서 화려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입으로 드럼 소리를 흉내내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연주가 아닌, 침만 뱉고 있는 듯했다. 춤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여 브레이크댄스를 배웠으나, 연습을 해도 실력이 제자리였다.
내 옆에 있는 친구는 조금만 연습해도 잘 추는데, 나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탈춤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탈춤에 재능이 있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당연하게, 또 흥미가 떨어졌다.
몸에 흥이 남아 있었다.
입으로 흥을 내는 건 포기했다. 팔과 다리로 흥을 내려고 하니 생각보다 몸치여서 힘들었다.
그러다가 옆에 친구가 펜을 이용하여 책상을 치고 있었다. 펜치기를 하고 있었다. 펜치기가 뭔지 모르는 구독자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면, 펜이나 주변 필기구를 이용하여 다양한 비트들을 연주하고 음악에 맞춰서 마치 드럼을 연주하는 흉내를 내는 행위다.
이 정도 되면 결과는 뻔하지 않는가. 어느 순간 흥미가 또 사라졌다.
요즘은 드럼을 배워볼까 10년째 고민하고 있다.
진득하게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다.
유행 따라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가, 남들보다 먼저 포기했다.
요즘도 그렇다. 작년에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생활 한복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300만 원 정도 팔았다.
'나'만의 책을 출간하고 싶어서 작년 9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도 하는가. 한 3주 동안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 소재가 떨어졌다. 3주 동안 글을 쓰고 3달을 쉬었다. 매일 문장을 끄적끄적하다가 다시 지웠다.
나만 느린 건가. 나만 맨날 시도해 보고 포기하는 건가. 걱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불안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어른들은 항상 어릴 때 바쁘게 살아야 노후가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바쁘게 산 어른들 50, 60대를 보면 노후가 정말 편안할까?
금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있다. 아무리 바쁘게 산다고 한들, 풀리지 않은 인생의 과제들이 있다.
50대, 60대가 되어 오늘을 돌이켜보면 분명히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 걱정들은 사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뭐 좀 늦으면 어떤가. 모두가 앞으로 달려갈 때 뒤에서 여유롭게 바라보면 어떤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울 때, 인생을 조금 낭비하는 건 괜찮다. 각자의 인생의 시계가 있다. 여유롭게 기다리면, '나'의 인생 시계 초침이 재깍재깍 움직일 것이다.
너무 미래만 바라보지 말자. 지금 당장을 즐기자.
인생에서 틀린 정답은 없다. 단지 각자 다른 길이 있을 뿐이며, 각자 가는 길 자체가 특별하다.
그렇게 오늘은 코스타리카 허니 프로세스 커피의 산뜻한 레몬 향에 빠져보았다. 잘 구운 노란 꿀고구마 같은 깊은 달콤함이 주는 여유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