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son Balsom/Les feuilles mortes
매일 같이 버스를 이용하시는 분들이라면 어느 순간 몇몇 버스기사님들의 낯이 익어 인사를 나누던 나누지 않던 내적 친밀감이 쌓이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 같은 경우도 오래전이지만 어느 중년의 여성 버스기사님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있습니다만 그분은 항상 단정하고 청결한 복장에 약간은 컬이 들어간 단발머리 그리고 반짝이는 큐빅으로 장식된 선글라스.. 마지막으로 상당히 공들인 네일 아트가 인상적인 분이었죠.
거기에 추가적인 특징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버스 문을 열고 닫거나 기어를 조작할 때 그 손놀림이 상당히 유려하고 고풍스러웠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술 공연에서 마술사가 관객들을 홀리기 위해 멋들어지게 손을 흔드는 느낌을 연상하시면 아마 비슷할 겁니다.
그런 손놀림과 함께 빛나는 네일아트를 보고 있자면 마치 여왕님이 모는 버스를 타고 있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포인트는 지극히 여성적인 모습으로 남성적인 일을 남성 이상으로 잘 해내는 여성들은 엄청나게 멋지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양쪽 성별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영국의 78년생 트럼펫 연주자이자 자신의 모교인 길드홀 음악 연극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을 하고 있기도 한 알리슨 발솜의 음반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여성 연주자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색소폰이나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라 하면 보통은 선이 굵은 남성 이미지와 연주가 쉽게 연상되곤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붉은 드레스의 한 여성 트럼펫터의 하이든 트럼펫 콘체르토를 시청하고는 고정관념이 깨지게 되었죠.
시원하고 힘 있는 연주 그리고 그 안에서 섬세하게 피어나는 완급조절의 디테일..
검게 차려입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 붉은 드레스 차림으로 선 그녀가 말 그대로 홍일점처럼 강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름의 끝자락에서 선선함을 느낄 때쯤 꼭 생각나는 앨범이 있으니 바로 이 앨범인 Paris입니다.
시들해진 여름에 작별을 고하기 좋은 아주 고즈넉한 곡들로 가득하며, 솔리스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에릭 사티, 아스토르 피아졸라, 조제프 코스마 등의 곡들로 레퍼토리가 짜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의 분위기를 가장 대표할 만한 곡은 조제프 코스마의 Les feuilles mortes(지는 잎, 고엽, 낙엽)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아직까지는 덥습니다만 갈수록 줄어들어 이제는 왔나 싶으면 어느새 가버리는 한 줌의 가을을 놓치기 전에 이 곡을 미리 들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날의 버스기사님께 이 곡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