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나의 글이 포털 사이트 '다음'에 게시되었다는 사실을 나의 오래된 친구 몇에게 알린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축하한다는 단 한마디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게 뭐지?" 혹은 "오호"라는 티끌 같은 리액션을 하고서 별다른 말 없이 사라지거나 대뜸 상관없는 딴소리를 꺼낸다.
따라서 그 글을 읽고 난 소감 따위는 당연하게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과연 읽어는 봤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의리 없는 친구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려고 쓰는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사실 나는 이 의리 없는 우리들의 방식을 은근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학창 시절부터 끈끈한 우정을 내세우는 관계로 형성된 그룹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성인이 되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런 성향의 윤곽은 점점 뚜렷해지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부르는 우정이라 함은 보통 물질적으로 시각화된 형태를 띠기 쉬웠던 것이 그 이유다.
그들이 가고자 하면 없는 시간도 내서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의리였고 넘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내 울타리의 빗장도 선뜻 열어줘야 하는 것이 친구였으며 필요할 때는 금전적인 지원도 서슴없이 부탁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각화된 관계는 말 그대로 눈으로 보이기에 비교하기도 쉽다. 내가 보낸 만큼의 호의에 비해 돌아오는 호의가 부족해 보이면 어느새 앙금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언제나 관계의 안녕을 눈금으로 측정하고 그 값을 장부에 꼼꼼히 적어놓기 때문이다.
결국 느낀 것은 그들이 믿는 의리라는 것은 육중한 피로감을 동반하는 마치 거래처와의 비즈니스 같은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의리와는 정반대의 궤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리'라는 것은 대체 뭘까?
이에 대한 답은 국어사전에서 의외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1.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
간단하게 말해서 그냥 서로 피해 주지 말고 기본 잘 지키면서 편하게 지내면 된다는 뜻이다. 즉 의리는 서로 누가 더 상대를 위해 불편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지의 게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관계에 자꾸 무언가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른 의미를 덧칠하려 하니 피곤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리 없는 친구다
결국 나의 주변에는 담백하디 담백한 존재들만 남아버렸다. 우리들의 우정은 마치 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맞으며 극도로 건조된 명태처럼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지만 가볍고 질기다. 다시 말해 이 말린 명태들에게 촉촉한 수분과 포근한 촉감은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관계는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예찬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 나 또한 때로는 설탕 한 스푼, 크림도 두어 스푼 들어간 관계가 생각날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가벼워서 편하고 별 다른 관리 없이도 잘 찢어지지 않는 실용적인 이 모습이 나름 마음에 든다.
한 없이 건조돼서 언젠가 바닷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흩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우리.
그래... 우리는 의리 없는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