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넬렉(Genelec 8381A) 청음회 후기
제넬렉(Genelec)은 1978년 핀란드에서 설립된 오디오 회사다. 제넬렉의 창업주인 일포 마티카이넨(Ilpo Martikainen)은 자택 지하에서 본인이 사용할 스피커를 직접 제작할 정도로 조예가 깊었으며 훗날 핀란드의 공영방송국과 연이 닿아 방송국에 자신의 스피커 납품하기 시작 후 제넬렉의 이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자택에서 스피커를 만들다가 사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그냥 집 옆에 있는 공터에 공장을 지어버렸다는 것이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건물들이 바로 제넬렉의 모든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공장이고 사진 좌측 하단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모든 것이 시작된 그의 집이라고 한다.
저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자면 그가 왜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제넬렉의 인상 깊은 점은 45년 이상의 역사를 걸어오는 동안 외부의 투자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기업은 외부 투자를 받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에 입김에 의해 최초에 기업이 설립되었던 당시의 이념은 변질되고 만다.
만약 제넬렉이 외부 투자를 받는 기업이었다면 현재의 저 풀 알루미늄으로 가공된 독창적인 디자인과 브랜드 철학은 아마 없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특징은 고집스러운 생산라인이다. 보통 기업은 제품 라인업이 다양해지게 되면 원가 절감을 위해 엔트리급 제품은 중국에 공장을 세워서 제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넬렉은 가장 저렴한 스피커부터 가장 비싼 스피커까지 모두 저 아름다운 풍경 속의 핀란드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렇게 외주가 아닌 모든 제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단일화된 생산 시스템으로 인해 제넬렉은 수십 년 전에 구매했던 제품의 AS가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해당 부품을 바로 만들어서 고쳐줄 수 있다고 하니 그들의 방식에서 자사 제품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구형 제넬렉은 최근 제품처럼 동글동글하지 않고 이렇게 각이 졌던 시절이 있었다. 출시된 지 오래된 제품이지만 아직도 방송국과 스튜디오에서 모니터 스피커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이날 들어본 스피커는 제넬렉에서 이번에 출시한 8381A라는 그들의 가장 크고 가장 비싼 스피커라고 한다. 실물로 보면 엄청난 위용을 보여준다. 소리는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답게 그리 친절한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웬만하면 듣기 좋게 소리를 만들어주는 가정용 하이파이 시스템과는 다르게 그냥 솔직하게 음원에 실린 정보들을 충실하게 재생해 낸다. 따라서 녹음의 퀄리티가 좋지 않다면 굉장히 거칠고 불편한 소리 또한 여과 없이 내보낸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시 체급은 체급... 시연이 시작되자 마치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초저역부터 공연장 맨 앞에서 듣는 듯한 보컬의 현장감 있는 목소리 그리고 정교한 고역의 표현으로 청자를 압도한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난다는 느낌보다는 벽에서 거대한 소리가 밀려온다는 표현이 맞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GLM(Genelec Loudspeaker Manager)라는 기술도 인상적이었는데 이건 오디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스피커에 탑재된 시스템이 공간을 파악해서 해당 공간에 맞는 최적의 소리를 스스로 밸런싱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따라서 GLM을 활용하면 다소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저음이 붕붕거린다거나 양쪽 스피커의 균형이 맞지 않는 등 난감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스피커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도록 솔루션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해당 시연장은 GLM 기능이 활성화된 채 음악을 재생했는데 특이점으로는 GLM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스윗 스팟이 상당히 좁았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덩치에 맞지 않게 정 가운데에서 듣지 않으면 밸런스 있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스윗 스팟에 앉아 있는 단 한 명을 위한 사치스러운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이 스피커는 지정된 좌석에서 듣고 모니터링하는 엔지니어 혹은 혼자만의 음악 감상 시간을 즐기는 고독한 부자에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물론 GLM 옵션은 별매라고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대부분의 액티브 스피커가 스피커 내부에 앰프를 내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액티브이면서도 외장형 앰프 채택했다는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똑같이 생긴 4개의 검은색 직사각형 덩어리가 그것인데 저렇게 밖에 나와있지만 사실상 스피커와 한 몸으로 여기면 된다.
비싸서 살 수 없는 웅장한 시스템!
하지만 제넬렉은 가격과 사이즈가 다양하고 기회가 되면 저 테이블에 올려진 작은 제넬렉 중 하나를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