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사실 나는 그간 녹차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녹색 식용색소를 슬며시 집어넣고 인공적인 녹차향을 가미한 녹차 무늬 아이스크림이고 나머지 하나는 녹차 함유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녹차의 쓰고 떫은맛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의도치 않게 고함량의 카페인을 섭취하게 되기 쉬운 유형이기 때문이다.
즉 녹차라는 재료는 생각보다 다루기가 쉽지 않은 재료로 전자 같은 경우는 가볍게 즐길 수는 있지만 진정한 녹차 아이스크림을 맛봤다고는 할 수 없고 후자의 경우는 녹차의 함량은 높지만 그 특색이 단점으로 승화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세상에는 그 미묘한 완급조절에 성공한 녹차 아이스크림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그렇기에 나는 괜한 모험을 하기보다는 초코나 바닐라와 같은 무난한 선택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나와 녹차 아이스크림의 인연은 끊어지는 듯했으나 최근 이것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어느 지인의 추천으로 '나뚜루 녹차 아이스크림'을 맛보기에 이른다.
사실 녹색이라는 것이 보기에는 산뜻하나 딱히 음식으로써 식감을 돋우는 컬러는 아니다. 그리고 패키지에 먹음직스러운 과일이나 견과류가 그려진 것도 아니고 녹차 잎사귀 몇 장이 그려져 있으니 더더욱 그렇기도 하다. 게다가 어느 유명한 아이스크림 장인의 수제 아이스크림도 아닌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일개 공산품.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그간의 스쳐 지나간 녹차 아이스크림들의 전적상 이것 또한 입에 맞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냉동고에 되돌려 놓을까 하는 갈등이 저며왔지만 속는 셈 치고 그간 초코와 바닐라로 점철된 나의 입맛에 지루함을 덜어 줄지도 모를 일탈을 선택하기로 한다.
아이스크림이 가장 맛있다는 시간인 오후 11시 30분. 나는 기대 반 염려 반인 마음을 안고 냉동고 깊은 곳에 안치해 두었던 녹차 아이스크림을 식탁 위로 옮겼다.
이내 'Jeju First Flush'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이는 제주 첫물차라는 뜻으로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경에 제주에서 수확한 어린 녹차잎이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린 녹차잎은 겨우내 농축된 양분과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마치 실내 아이스링크장처럼 반반하게 다져 얼려진 그 표면을 티 스푼으로 조금 긁어 첫맛을 본다. 그리고 생각보다 진하지는 않았지만 담백한 풍미가 입안에 퍼진다. 일반적으로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아이스크림은 맛의 해상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주재료의 맛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거나 당도가 너무 높은 경우 있는데 이 나뚜루 녹차의 지향점은 달랐다.
이번에는 온전한 한 스푼을 떠서 맛을 본다. 솔직히 놀랐다. 녹차 아이스크림을 입에 머금고 다음 스푼이 이렇게 기다려진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깨끗한 삼베적삼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바삭한 향기와 고소한 녹차의 맛이 미각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헤프게 발산해 대는 것이 아닌 절제되어 있는 이 맛은 절정에 달하고 까슬한 떫음이 느껴질 무렵 마치 숙련된 어느 에이스 투수가 던진 포크볼의 궤적처럼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입안에서 사라진다. 꼬리가 길지 않은 이 맛은 그야말로 녹차가 표방할 수 있는 깔끔함과 담백함을 묘사하기에 충분한 셈이었다.
그리고 스푼을 거듭하던 어느 순간 적당히 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에는 기존보다 좀 더 윤곽이 뚜렷해진 풍미에 탄력적이고 찰기 어린 식감까지 가세하기 시작한다.
느끼고 사라지고, 또 새로이 느끼고 사라지고...
이 즐거운 시소 운동 같은 행위에는 서툰 어린아이와 같은 맹목은 없다. 단순한 단맛이 주는 도파민에 빠져 스푼을 놓지 못한 채 아이스크림 한통을 통째로 비우는 어리석은 현혹의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치 녹차맛이 좋다고 스포츠 음료를 들이켜듯이 벌컥벌컥 마시게 되지는 않듯이 이 아이스크림 또한 그러했다.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이 드는 시점이 오면 내려놓는 스푼에 미련이 남지 않는 성숙한 어른의 맛이랄까.
끝맺음까지 정갈한 담백함.
다도 하듯 조금씩 즐겨야 맛있는 맛.
그리고 어우러지는 우리.
녹차 아이스크림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꿔 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자세히 음미해야 맛있다
1+1 행사는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