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거울이 되어.

30대, 소개팅의 어려움

by 류이현


한때 내 삶의 청사진에는

서른 초반쯤,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그림이 당연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상을 비껴갔다.


몇 번의 연애는 결혼이 아닌 마침표로 끝났고,

첫 회사에서의 경험은 성취 대신

아쉬움만 남긴 채 이직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이전보다 무거워진 책임감에 파묻혀 지내는 동안

일은 강력한 마취제처럼 작용했다.


이별의 아픔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도 무뎌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점차 색을 잃고,

옅은 회색의 무채색이 되어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시간은 훌쩍 나를 앞질러 있었다.


신입사원들의 책상이 하나둘 늘어나고,

친구들이 아기들 모습을 보여줄 때,

서른 중반이라는 나이가

명찰처럼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어색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어색함을 인정하고

약간의 초조함과 불안감에 떠밀리듯

다시 나선 소개팅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한다.


상대방도 나도

20대의 패기와 열정은 희미해진 채,

각자의 삶의 무게와 피로감을

얼굴에 옅게 새기고 앉아있다.


업무를 힘겹게 마쳤을

상대방의 모습에서 설렘보다는

고단함이 먼저 읽힌다.


문득, 씁쓸한 질문이 머릿속을 스친다.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상대의 얼굴에 다른 표정을 그려 넣을 수 있었을까?


사무적인 대화 몇 마디가 오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지만,

얼굴에는 망설임을 읽을 수 있다.


삶의 피로는

그 알아가는 시간마저 사치라며 우리를 재촉한다.


결국 자책의 화살은 안으로 향한다.

내가 조금 더 표현을 잘했더라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스무 살의 나는

대체 어떻게 사랑을 했던 걸까?


그때의 우리에겐

서로를 알아갈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밤을 새워 일출을 보러 가도 지치지 않았고,

실수조차 추억이라 부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이 야속하다.


마치 나는 아직 플랫폼에 서 있는데,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실은 열차는

이미 저 멀리 떠나가 버린 기분.


그저 멀어지는 불빛을 바라보며,

또 한 번 시간의 무정함을 실감할 뿐이다.


문득,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 사람의 지친 얼굴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 사람 역시 자신만의 플랫폼에서

떠나버린 열차를 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외로움을 들고 나와,

잠시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었을 뿐이다.


오늘밤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을 거두고,

그 사람의 앞날을 위해 조용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