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그림은 한 번 보고 가셔야죠!

메트로폴리탄,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

by SUN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 Gertrude Stein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905-1906

Oil on canvas

100 × 81.3 cm


미국인 소설가이자 컬렉터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파리에서 지내면서 피카소가 무명일 때부터 지원했던 강력한 후원자로 이 작품을 1906년 피카소로부터 선물 받은 후 그녀가 살아 있는 약 40여 년 동안 한 번도 팔거나 대여하지 않고 거주하던 파리 플뢰루스 가 27번지 아파트 거실에 걸어놓고 그녀가 열었던 많은 살롱에 왔던 수많은 예술가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1946년 7월 27일 거트루드 스타인 사망 후 남긴 유언에 따라 이 그림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되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최초의 피카소 작품이 된다.

피카소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 그녀의 파리 스튜디오 소파에 앉아 있는 거트루드 스타인. From Library of Congress


거트루드 스타인 1874 - 1946

남자인가, 여자인가? 이름이 거트루드 스타인이라고 한다. 남자 이름 같기도 하고? 아인슈타인 Einstein처럼 스타인 Stein이라고 붙은 이름들은 독일어로 ‘돌 Ston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유대인인 경우가 많다. 18-19세기 유럽에서 성씨가 없던 유대인들에게 성을 강제로 갖도록 하는 법이 시행되었는데 이때 유대인들이 주변에 있는 자연경관들에서 성을 가져온다. 스티븐 스필버그, 마크 저커버그처럼 Burg 도 독일어로 ‘산 Berg’에서 유래한 말로 유대인 이름의 흔적인 경우가 많다. 거투루드 스타인 역시 유대인계 미국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여성 소설 작가이자 미술 컬렉터였다. 2차 세계대전 때에도 나치가 점령했던 프랑스에서 나치 협력 정부의 고위 관료인 베르나르 파이와의 친분으로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1934년 한 인터뷰에서 ‘히틀러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어야 한다’는 그녀의 발언과 나치 지지 활동 등으로 친나치 성향 인물로 분류되기도 한다. 평생 반려자인 여성 앨리스 B. 톡클라스와 함께 40여 년 함께 지낸 동성애자로 당당히 둘이 연인 관계임을 밝히고 활동하였다.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 Gertrude Stein, 1905-06, Pablo Picasso, The Met

피카소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그녀를 앉혀 놓고 80-90번이나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더 이상 당신이 보이지 않아!’ 외치며 얼굴 부분을 다 지워버리고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 버린다. 여행에서 다시 돌아온 피카소는 다시 거트루드 스타인을 불러서 앉혀 놓지 않고, 자신의 기억과 상상으로만 그녀의 얼굴을 단숨에 그려 이 그림을 완성시킨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전혀 거트루드 스타인을 닮지 않았다며 시덥잖게 평가하였는데 피카소는 이에 유명한 말을 남긴다.


결국 그녀가 이 그림을 닮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나이가 들자, 놀랍게도 그녀의 모습이 피카소의 말처럼 점점 초상화와 닮아 가고 있다며 사람들은 피카소가 그녀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강인한 성격을 잘 표현한 그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녀의 실제 얼굴과 한 번 비교해서 볼까? 여러분의 생각은?

피카소 그림 앞에 앉아 있는 거트루드 스타인 Gertrude Stein con un ritratto di Picasso, 1922. Gelatin silver print, 7 × 9 3/10 in (17.7 × 23.5 cm). © Man Ray 2015 Trust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 ADAGP, Paris [2023]


얼굴이 너무 가면 같은데? 플라스틱 가면을 쓰고 있는 느낌? 짙은 선처리와 주름 없는 매끈매끈한 표면 등이 살아 있는 얼굴보다는 인위적인 감정 없는 목각 느낌이다. 이를 아프리카 가면 같다고 보기도 한다. 저 얼굴 가면을 벗으면 안에 진짜 얼굴이 있을 것 같은데? 피카소는 인물 초상화를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러니 하나도 안 닮았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그런데 이 부분이 이 그림을 높게 평가하는 포인트이다. 바로 ‘피카소의 입체주의 Cubism로 넘어가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게 아니라 사물을 단순화하여 본질에 충실하고,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재해석하여 그려낸 그림이다라는 것이다. 피카소는 그녀의 외면을 보이는 대로 그린게 아니라 그녀의 묵직한 성격과 굵은 카리스마의 권위 있는 얼굴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서 여장부 같은 선 굵은 그녀의 성격이 읽히는데? 피카소는 그녀의 본질을 그린 거구나.


피카소가 처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입체주의를 바로 그린 건 아니다. 평생 동안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는 시기에 따라 나이에 따라 변화를 거치면서 다양한 그림들을 펼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작품이 유화뿐만 아니라 드로잉과 판화, 조각까지 합쳐서 약 300여 점 넘게 소장하고 있고 상설 전시만 약 30-40여 점이 나와 있어서 피카소의 시대별 작품 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너무나 좋다.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피카소 작품과 연관시켜 그의 시대별 작품 경향을 흥미 있게 한 번 보고 가자.


피카소의 눈먼 사람의 식사 The Blind Man's Meal, 1903, Pablo Picasso, The Met

피카소의 청색 시대 Blue Period는 피카소가 스페인에서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서 정착하는데 너무나 힘들었던 1901년에서 1904년간의 시기로,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같이 갔던 친한 친구인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까지 겹쳐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작품 또한 온통 우울하고 어두운 블루 칼라로 그려졌던 시기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만나는 청색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눈먼 사람의 식사’는 그냥 그림 앞에만 서 있어도 우울하기 그지없다. 온통 우울한 블루 컬러가 그림 전체를 뒤덮고 있다. 눈이 움푹 들어가 있는 눈먼 사람이 손끝 하나로 전해지는 촉감을 눈 삼아 빵과 포도주를 만지며 조용히 의식을 치르듯이 식사를 하고 있다. 빵은 나의 몸이요, 포도주는 나의 피라고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성체성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숭고해 보인다. 이 그림 앞에 더 오래 있다가는 나도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다. 빨리 이동하자.


피카소의 배우 The Actor, 1904-05, Pablo Picasso, The Met

청색 시대 다음으로 온 피카소의 장미 시대 Rose Period는 피카소가 파리에서 연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림이 하나 둘 팔리고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던 1904-1906년을 말한다. 그림이 그전보다 밝고 빨강, 주황, 핑크 등 장미 같은 밝은 계열의 컬러가 주를 이루고 광대, 할리퀸, 카니발 등 유쾌한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위 작품은 피카소의 ‘배우 The Actor’로 이전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빨간색 계통의 색이 많이 쓰였다. 파란색 스타킹등에서 아직 블루끼가 완전히 빠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정말 확연히 밝아진 그림이다. 서커스 광대의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일까? 손과 다리가 과장되리만큼 길게 그려져 있어서 엘 그레코의 매너리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런 과장이 슬픔과 기쁨을 더 오버해서 표현하는 광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래쪽에 보이는 빨간 면 뒤에 보이는 손이 깜짝이야! 그 당시 배우가 대사를 까먹을까 봐 보여주는 프롬프트를 직접 다른 사람이 손으로 넘겨주곤 했다는데 그것일까? 이 빨간 면 부분을 2010년 1월에 한 관람객이 넘어지면서 짚는 바람에 찢어진 약 15cm 수직으로 균열이 났던 곳이다. 그 당시 이 작품의 감정가가 약 1,600억 원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이슈였을까? 캔버스 실밥이 터져 나올 정도로 손상이 컸는데 메트로폴리탄의 전문 복원팀이 캔버스 실 하나하나를 현미경으로 보며 재직조 하여 지금은 눈으로 거의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복원시켜 현재는 안전을 위해 강화 아크릴로 보호되어 있다. 그래도 당신 눈에는 꿰맨 자국이 보일 수 있으니 작품 아래 부분에 가까이서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란다.


피카소의 아질러 뱅에서 At the Lapin Agile, 1905, Pablo Picasso, The Met

또 다른 장밋빛 시대의 분위기를 물씬 느껴 볼 수 있는 작품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아질러 뱅에서’ 작품이다. 아질러 뱅 Le Lapin Agile 은 당시 파리 몽마르트에 있는 예술가들의 단골 술집 이름으로 이 그림은 피카소가 술값 대신 그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 그 당시는 이렇게 그림으로 술값을 계산하는 낭만이 있었구나. 그림 정중앙에 화려한 다이아몬드 패턴의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피카소 자신이고 그 옆에 화려한 장식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여인이 피카소와 한 때 연인이었던 제르맹 피쇼이다. 사랑하는 연인인데도 둘이 서로 쳐다보지 않고 각자 앞을 바라보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피카소는 술잔을 들고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모델이었던 제르맹은 피카소의 절친이었던 카사헤마스가 너무나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는데 그녀가 거절하자 1901년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녀를 총으로 쏘려다 실패하고 정작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로 피카소는 너무나 큰 슬픔의 청색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여인이 또 피카소의 연인인 된다. 난 모르겠다, 그냥.


피카소의 서있는 누드 Standing Nud, 1907-08, Pablo Picasso, The Met


다음으로 피카소의 아프리카 시대 African Period는 아프리카 유물이 파리로 많이 들어오던 시기에 앙리 마티스가 나무로 된 아프리카 조각상을 처음으로 보여주면서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에 깊이 빠지게 되었던 1906-1909년을 말하는 것으로 피카소 작품 속에 아프리카 조각, 아프리카 전통 가면, 고대 이집트 예술, 이베리아 조각 등이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에서 그녀의 조각상 느낌의 얼굴이 이 영향이며 피카소의 ‘서있는 누드’ 또한 아프리카 조각상의 모습과 입체주의의 과도기적 모습을 모두 지니고 있다. 1907년에 그려진 같은 뉴욕의 현대 미술관 MoMA에 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속 여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이러한 소재에 심취해 있던 시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분석적 큐비즘을 보여주는 피카소의 오일 밀 The Oil Mill, 1909, Pablo Picasso, The Met

마지막으로, 피카소의 큐비즘 시대 Cubism Period는 피카소가 본질의 그림을 추구하는 폴 세잔에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에 흠뻑 빠졌던 시기로, 초기의 조르주 브라크 Georges Braque와 함께 단색의 컬러와 도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었던 분석적 큐비즘 Analytic cubism 이 1909-1912년이고, 조금 더 나아가 종합적인 합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칫 무슨 그림인지 잘 모르게 보이는 종합적 큐비즘 Synthetic cubism 이 1912-1919년 정도까지이다. 위의 피카소의 ‘오일 밀 The Oil Mill’ 작품은 분석적 큐비즘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스페인 카타로니아 Catalonia의 현재 호르타 데 생트 호안 Horta de Sant Joan 지역에서 아마씨, 땅콩 또는 올리브, 야자등의 식물성 기름을 짜는 오일 공장의 풍경을 그린 것인데 보이나? 실제 이 동네 사진을 보고 작품을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약간의 형태가 보이긴 한다.

호르타 데 생트 호안 Horta de Sant Joan, 카타로니아 Catalonia, Spain From travelinspires.org


이렇게 어느 정도 형태를 가지고 있는 큐비즘이 분석적 큐비즘인데 반해 여기서 더 나간 종합적 큐비즘은 아 정말 무엇인지 알기 쉽지 않다. 내가 피카소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끼게 만들며 나는 예술가가 되기가 쉽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작품명을 봐야 겨우 이런 그림이라고? 할 정도이다. 거의 추상화에 가깝게 보여 큐비즘을 보고 추상화의 문을 열었다고 보기도 한다. 아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만나는 ‘피카소의 안락의자에 앉은 체미스(속옷)를 입고 있는 여인’이다. 아니 이게 여인이 어디 있는 건가? 제목을 봐도 모르겠다. 설명은 또 어떻고? 보라색 벨벳 안락의자에 여성이 앉아 있는데 그녀의 왼쪽 팔은 들고 있고 오른손은 신문을 들고 있으며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가슴은 드러낸 채로 앉아서 발과 발목을 아래로 내려놓고… 나는 더 이상 안 볼란다, 머리 터질 것 같다. 이게 종합적 큐비즘이란다, 얘야.

종합적 큐비즘을 보여주는 피카소의 안락의자에 체미스(속옷)를 입고 있는 여인 Woman in a Chemise in an Armchair, 1913-1914, Pablo Picasso, The Met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wikipidia.org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1881 - 1973

20세기 최고의 화가이자 현대 미술의 거장 등 많은 수식어가 붙는 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그의 새로운 실험 정신과 혁신적인 작품으로 높은 명성과 막대한 부를 동시에 얻은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의 한 명이다. 피카소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도자기,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평생 아이의 순수함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는 입체주의 Cubism의 대가로 기억되고 있다.

난 12살 때부터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렸다.
나는 평생 아이처럼 그리고 싶었다.

- 파블로 피카소 -

피카소가 12살 때 그린 토르소, 14살 때 그린 나이 든 어부, 15살 때 그린 사제와 어머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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