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보다 더 미친 광기의 천재 화가가 있을까요?

메트로폴리탄, 카라바조의 뮤지션들

by SUN 작가
tempImageur7s2t.heic

From hyperallergic.com


음악가들 The Musicians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97

Oil on canvas

92.1 x 118.4 cm


1595년 카라바조는 그의 후원자인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의 집에 들어가 음악을 좋아했던 델 몬테 추기경의 의뢰로 위 그림을 그린다. 1627년까지 이 그림은 델 몬테 추기경의 소유였다가 사망 후인 1628년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첫 판매가 시작 되고 그의 여동생인 아귀용 부인이 1657년까지 소장한다. 그 이후 약 270여 년 동안 이 그림은 그려졌다는 기록만 있을 뿐 어디에 있는지 행방이 묘연한 채 사라진다. 그러다가 1933년 영국 북부의 골동품 딜러인 조 쿡슨이 컴버랜드의 시골집에서 이 그림을 우연히 발견한다. ‘매우 더러웠어요. 그리고 그것이 계속 덧 칠해진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이 그림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쿡슨은 카라바조의 모조품 정도 되겠지 생각하고 그 집주인이 사망한 후 이 그림을 저렴하게 구매하여 또 몇 년 동안 먼지만 쌓인 채 방치하다가, 1947년 지역 신문에 이 그림을 판매한다고 광고를 낸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퇴역 군의관인 W.G. 트웨이츠 대위에게 £100에 판다. 그 이후 1952년까지 이 그림은 W 대위의 집에 무심코 걸려 있다가 그 친구가 런던의 전문 미술사학자인 데이비드 캐리트에게 이 그림의 사진을 하나 보내는데 그 사진을 보고 캐리트는 바로 카라바조의 진품임을 직감하며 달려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곧바로 경매가 진행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신속하게 입찰에 참여하여 £20,000 (약 $56,000)에 낙찰받게 된다. 1983년에 광범위한 복원을 거쳐 후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하나 남은 궁금증은 1933년 전인 약 270여 년 동안 이 그림은 어디에 있었을까? 어떻게 시골집에 쳐 박혀 있었던 걸까?


tempImageQV67TQ.heic

195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카라바조의 ‘음악가들’ Fig. 37 Installation view of The Musicians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hotographed in 1955.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tempImageLlrjWi.heic

카라바조의 음악가들 The Musicians, 1597,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카라바조의 수식어인 ‘미친 광기’ 와는 너무나 다른 그림인데? 그의 초기 작품이라고 한다. 뒤로 갈수록 심장이 깜짝깜짝 놀랄 작품들을 그려 낸다. 아직 미치기 전이라고 보면 될까? 카라바조의 생애가 1571년-1610년이라고 하니 이 작품은 그의 나이 26살일 때이다. 참 젊다. 카라바조도 젊고 그림 속 남자들도 젊다. 아이돌 느낌인데? 곱상해 보이기도 하고, 아직은 수컷의 향기보다는 귀여운 남자아이들 느낌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보이는 살짝 뒤편에 있는 저 젊은이가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으로 해석한다. 잘 생겼는데? 20대는 다 저러지 않았나? 카라바조는 이렇게 자신의 자화상을 그림 안에 잘 그려 넣는다. 자기애 충만이다. 가운데 기타 같은 악기를 들고 있는 청년이 카라바조의 친구이자 화가인 마리오 미니티라고 하고,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청년은 카라바조가 묵고 있는 델 몬테 추기경 저택의 일원이 아닐까 본다. 왼쪽 뒤에 있는 남자는 자세히 보니 어? 등 위로 날개가 있고 오른팔 뒤로 살짝 화살이 보이네? 그리고 아래의 손은 포도를 만지고 있네? 맞다. 큐피드이다. 이 큐피드 하나로 그림의 주제가 현실적인 음악 콘서트에서 신화적 ‘사랑’이라는 컨셉으로 훅 넘어간다. 재미있다. 기타 같이 보이는 악기는 류트 Lute라는 악기로 헤드가 90도로 꺾여 있는 것이 신선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많이 쓰던 악기로 ‘악기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는데 이건 음악을 좋아하는 델 몬테 추기경의 집에 소유하고 있던 다양한 고가의 악기들 중의 하나를 가져다 그린게 아닐까 싶다. 앞쪽에 놓인 바이올린은 악보를 보고 있는 아이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림 밖 우리에게 들어와서 같이 연주해 보자고 나를 위해 놓아 논 제5 멤버의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 로마의 옷인 흘러내리는 로브를 입고 살짝 입술을 벌리며 몽환적인 분위기의 얼굴 표현 연출이 카라바조의 동성애적인 욕구를 표현한 게 아닐까 보기도 한다. 그림의 오랜 방치로 악보가 많이 손상되었다고 했는데 복원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살아있는 악보를 보면서 노고에 감사함을 표한다. 실제 작품을 보게 되면 발그레한 볼살과 살짝 상기된 표정에 나도 모르게 설렌다. 카라바조, 그림 하나는 끝나게 그렸네.

tempImageXTXWRu.heic

카라바조의 ‘음악가들’ 얼굴 부분

tempImageCVzPWQ.heic

카라바조의 ‘음악가들’ 작품 옆에 센스 있게 놓여져 있는 그림 속 악기인 류트 Lute


이랬던 카라바조가,

지금 우리가 본 위 그림은 정말로 인트로에 불과하다. 흑화(?) 되기 전 느낌 정도이다. 그냥 너무나 순진 무구한 어린아이의 그림 정도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한 화가가 이쁜 그림만 그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제 그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 한 번 보자. 훅 들어올 수 있으니, 심장 약하신 분들은 안전벨트 꼭 매고 조심히 보시기 바란다. 훅!

tempImagemRp5lc.heic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Judith Beheading Holofernes, 약 1598-1599,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로마, 이태리


헉, 목을 저렇게 베다니. 칼이 반쯤 들어가 있고,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네. 끔찍하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절정의 순간을 사진처럼 찰칵! 이게 카라바조이다. 목 베이는 남자의 표정 보이나? 외마디 악! 소리를 내는지 아니면 못 내고 입만 벌리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실감 난다. 왼손은 그의 머리를 잡고 있고 오른손은 칼을 힘껏 쥐고 그의 목을 치고 있다. 저 여인의 이마 미간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오른쪽에 서 있는 노인의 힘 준 입술과 두 손에 천을 꽉 쥐고 서 있는 모습에 이 얼마나 중요한 거사인지 단호함이 느껴진다. 이 와중에도 카라바조, 그림 하나는 정말 끝나게 그렸구나. 내 목이 제대로 있는지 자꾸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이게 카라바조구나.

이 그림은 구약성서의 외경인 ‘유디트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아시리아의 장군인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의 베툴리아 성을 포위하여 별명 시키려고 할 때 유대인 과부였던 유디트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이쁘게 치장을 하고 적진으로 들어가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술에 잔뜩 취하게 한 뒤 그의 침실에서 그의 칼로 목을 베어 승리를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림 속 유디트는 카라바조의 친구이자 몸 파는 여인인 필리데 멜라드로니로 카라바조의 여러 작품의 모델로 등장한다. 성서 속 인물의 모델로도 몇 번 등장하는데 몸 파는 여인을 신성한 성서 속 인물의 모델로 그려 넣었다고 하여 의뢰한 성당으로부터 그림이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럼 카라바조는 왜 이런 끔찍해 보이는 그림을 그렸을까? 어떤 해석은 이 당시 로마에서는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죽인 베아트리체 첸치이가 처형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카라바조가 이것의 불합리함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데 내 생각은 실제 카라바조의 성격이 대단히 폭력적이었고 이런 죽음의 절정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게 아닐까 싶다. 실제 난투와 폭력, 소란 사건들이 한두 번이 아니다. 카라바조가 죽기 4년 전인 1606년 5월 8일에 테니스와 비슷한 공놀이인 팔라 Palla라는 경기 중 일어난 폭력 다툼 끝에 란초 토마소니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후 도망자 신세가 된다.


tempImagew1d6ov.heic

유디트와 같은 듯, 다른 듯 요부 살로메를 그린 카라바조의 세례 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 Salome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 약 1607,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Royal Palace of Madrid, 스페인


카라바조는 이처럼 드라마틱한 장면의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을 찰칵! 사진 찍듯이 그리기를 좋아한다. 감정이 극대화되어 있는 순간을 그린 작품들이 많다. 그럼 이러한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 느낌을 카라바조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바로 빛이다. 배경은 칠흑과 같이 어둠게 하고 주제의 한 스폿만 포커스로 강렬하게 빛을 주어 절정을 표현한다. 쓸데없는 배경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기보다는 관객에게 이것만 보세요! 하고 절정의 포인트만을 강렬하게 빛을 비추어 준다. 빛으로 드라마틱한 순간을 극대화시키는 효과이다. 이것을 카라바조가 처음 시도했다고 본다. 그래서 카라바조를 빛과 어둠의 마술이라고 불리는 테네브리즘 Tenebrism의 창시자로 보는 이유이다. 이 시기의 거장들은 모두 이 카라바조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도, 역동적이고 화려한 색채와 장식성을 잘 표현하는 플랑드르의 루벤스도, 스페인의 대가 중의 대가인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도, 네덜란드 일상의 아름다움을 빛과 분위기로 잘 표현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베르메르도 모두 카라바조 미술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한다. 우리는 이들을 통틀어 바로크 미술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카라바조가 곧 바로크이다. 바로크가 곧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를 빼고는 바로크를 논할 수가 없다.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의 바로크 Baroque 미술은 그 앞의 ‘완벽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끝내고, ‘절정의 순간, 찰칵’이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의 문을 열게 된다. 이것을 카라바조가 해 낸다.


카라바조는 자연 그 자체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그 어떤 미화보다 강력한 진실을 그려낸다

-피터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카라바조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200년 전에 이미 사진의 시대를 발명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카라바조의 작업과 함께 현대 회화가 시작되었다.

-앙드레 베른-조프루아 André Berne-Joffroy, 미술 비평가-


또 하나 카라바조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성경 속 신성한 이야기를 일상의 이야기로 바꿔 버린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분명 성경에서 가져왔는데 카라바조의 그림 속 인물들은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일상의 상인이나 부랑자, 헌 옷을 입은 사도, 시커먼 발바닥 등의 표현으로 카라바조는 저세상 성모 마리아,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의 일반적인 생활 안으로 들어와 있는 예수님, 사도들의 모습으로 그린다.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성격이 괴팍해서 폭력적이어서 그렇지 우리가 감히 카라바조를 바로크의 거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tempImagerNnDh3.heic


tempImageN3FIkd.heic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09-10,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Galleria Borghese, 로마


어이쿠, 목을 베어 머리를 저렇게 들고 있다고? 마음의 준비는 했다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베고 들고 있는 모습이다. 골리앗의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눈과 입을 모두 벌리고 목이 베어 다윗의 손에 들려 있는 골리앗의 얼굴은 가만히 보니 그전에 자화상으로 많이 그렸던 카라바조의 얼굴과 닮았다. 그렇다. 목 베여진 자가 곧 카라바조 자신이다. 자신의 얼굴을 목 베인 머리로 그려 넣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렇게 표현한 것도 놀라운데 그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표정이 승리를 만끽하는 용맹스러운 승리자의 표정보다는 측은한 연민과 동정심의 느끼는 듯한 얼굴이다. 이건 또 왜일까? 다윗은 또 젊은 날의 카라바조 얼굴을 그려 넣은 게 아닐까라고 해석한다. 젊은 카라바조가 나이 든 현재의 카라바조 머리를 잘라서 들고 있다. 카라바조가 카라바조를 들고 있다. 와, 반전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현재 나 카라바조는 목을 베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은 몸이니 측은지심으로 저의 살인죄를 사면해 주세요, 추기경님이다. 바짝 엎드린 모습이다. 다윗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의 칼날에는 H-AS OS 가 적혀 있는데 이건 라틴어 ‘HumilitAS Occidit Superbiam 겸손은 자존심을 죽인다’라는 뜻이란다. 블랙 배경에 다윗과 골리앗만 비추고 있는 빛, 목을 벤 절정의 순간 찰칵,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두 사람으로 표현한 카라바조, 천재 맞구나.




tempImageeqk99v.heic

카라바조의 성 토마스의 불신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약 1601-1602,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Bildergalerie (Sanssouci), Potsdam, Germany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39세)

아, 이 그림을 그린 화가였구나. 성당 주보지에서 처음 보고 ‘그림 실감 나게 그렸네’라고 생각했는데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바로 카라바조였다. 찢어진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고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성 토마스의 모습이다.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그림의 스토리를 알기 위해 24절에서 29절까지의 내용 한 번 보자.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다시 봐도 정말 실감 나게 그렸네. 우리가 바라보는 쪽으로 훤히 보이게 그려서 나도 모르게 허리를 살짝 굽히고 같이 볼 뻔했다. 허름한 찢어진 옷을 입고 있는 토마스가 잔뜩 의심 가득한 얼굴로 눈을 치켜뜨고 이마의 주름 가득히 쳐다보며 손을 넣고 있는 모습이 확실히 일상이다. 그래서 더 실감 나나 보다. 블랙 처리된 배경과 강렬한 빛, 손가락을 넣은 드라마틱한 절정의 순간을 찰칵!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카라바조, 나도 어느새 그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1571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5살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13살 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가난에 허덕이다 밀라노 화가인 시몬 페테르자노에게 4년 동안 수습을 받고 1592년 그의 나이 21살 때 로마로 넘어가 델 몬테 추기경 등의 후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화가로 명성과 돈벌이를 시작하게 된다. 괴팍하고 난폭한 성격 탓에 많은 싸움에 휘말리고 결국 1906년 싸움 끝에 그만 살인을 하고 만다.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아무나 그를 죽여도 된다는 말에 엄청난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며 로마를 떠나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 등을 떠돌아 도피 생활을 한다. 그 와중에 또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다. 약 4년간의 도피 생활 끝인 1610년 여러 번의 구애 끝에 결국 교황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로마로 돌아가던 중에 토스카나의 에르콜레 항구 근처에서 열병이 걸려서 안타깝게 죽고 만다. 혹자는 누군가로부터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는데 결국 39세의 짧은 생을 이렇게 허무하게 마감한다. 인생 자체도 참 드라마틱하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그림 좋아라 하더니 삶 자체도 그냥 바로크이네.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카라바조의 그림 하나 더 보자.


tempImagesA8xVn.heic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부인 The Denial of Saint Peter, 1610,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아니, 빛과 어둠의 마술사로 빛을 잘 쓴다, 잘 쓴다 했더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냐? 뭐가 보이나? 이렇게 블랙으로 칠흑처럼 그린다고? 참 감질맛 나게 그렸네. 이렇게 어두우니 더 자세히 집중하게 되는 건 있네. 그린 연도를 보니 1610년이다. 카라바조 생애의 마지막 해인 1610년에 그린 작품으로 또 다른 작품 ‘성 우르술라의 순교’와 함께 죽기 몇 달 전에 남긴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꼽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림 중에 가장 어두운 절정의 그림인가 보다. 더 그렸다간 다 블랙으로 칠해 놓고 보이는가? 할 정도이다. 그의 빛과 어둠을 표현하는 스타일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작품명이 성 베드로의 부인이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도중에 베드로의 배신을 예고한다.


루카 복음 22장

33절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34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끊어 버릴 것이다.”


이후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체포되어 끌려갈 때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사람들 틈에 섞여 불을 쬐며 눈치를 살핀다. 베드로에게 세 번의 추궁이 이어지는데 첫 번째는 한 하녀가 ‘당신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지요?” 물으니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하며 부인한다. 두 번째 다른 사람이 ‘당신도 그 패거리군’ 하자 베드로는 다시 ‘ 이 사람아, 나는 아니란 말이오’ 하며 두 번째 부인한다. 약 한 시간 뒤에 베드로를 보고 ‘당신 말투를 보니 확실히 갈릴리아 사람이 맞소’라고 몰아세우니 베드로는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모르오’ 하며 세 번째로 부인한다. 그 순간 닭이 울고 뜰에 서 계시던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치자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엄청나게 슬피 울며 회계를 한다. 카라바조의 이 작품은 이 세 번째 추궁을 당하는 베드로의 당황해하는 표정을 그린 그림이다. 병사와 한 여인이 베드로를 가리키며 당신 맞지? 하고 있고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키며 난 아니란 말이요,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둠 속에서도 주제는 확실히 전달되고 있는 게 신기하다. 베드로의 이마 주름과 표정이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 속 베드로가 처한 상황이 카라바조 자신의 절망적인 심정과 닮았다고 생각하여 베드로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그린게 아닐까? 이 세 번 부인 끝에 회개한 베드로의 인간적인 모습이 불안전한 나와 닮은 듯하여 더 공감이 간다. 그래서 나의 세례명도 베드로로 지었는데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겸손하게 살자.


자연을 모방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

-카라바조, 1603년 명예훼손 재판 기록-


인생에서 한 번은 예술이 주는 기쁨과 위안을 받아 보시길 바라는 작은 바람입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자료의 저작권자에 있음을 알립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게시 중단 등을 원하시면 shaan@daum.net 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메두사의 머리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젊은이는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