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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Mar 04. 2021

모마 MoMA, 프리다 칼로의 플랑-창과 나

Frida Kahlo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Fulang-Chang and I

1937 (assembled after 1939)

56.5 x 44.1 x 4.4 cm, 64.1 x 48.3 x 4.4 cm 


1938년 미국 뉴욕 New York 줄리앙 레비 갤러리 Julien Levy Gallery 에서 열린 첫 전시회에 출품된 이후, 프리다는 1939년 그녀의 친구 메리 스클라 Mary Sklar 에게 이 작품을 주는데, 친구가 거울을 볼 때 자신이 함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면서 거울을 하나 더 옆에 붙인다. 이후, 메리 스클라의 기증으로 모마 MoMA 의 소유가 된다.







Frida Kahlo 프리다 칼로,

멕시코가 낳은 최고의 화가, 멕시코의 국민 화가이자 멕시코의 자존심, 20세기 가장 중요한 화가 중의 한 명으로 불리는 프리다 칼로(1907-1954)이다. 프리다 만큼이나 한 인생에서 여러 고통스런 경험을 한꺼번에 많이 해 본 사람이 또 있을까? 프리다의 이름이 곧 고통이라는 대명사로 쓰일 정도이다. 자신이 겪은 인생에서의 힘든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이다. 힘든 고통을 그녀만의  직설적인 표현법으로 화폭에 그려내고,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에 공감하면서 그녀를 위로하기도 하고, 위로 받기도 한다.


Frida Kahlo 1907 -1954 , 1926 photographed by her father, Guillermo Kalho, © Frida Kahlo Museum


Meet Frida Kahlo, From 'Coco'            https://youtu.be/jetnHsRfBjE




There have been two great accidents in my life.
One was the trolley, and the other was Diego.
Diego was by far the worst.

내 인생에 두 번의 아주 큰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였고, 또 하나는 디에고였다.
디에고가 최악이다.   

- Frida Kahlo 프리다 칼로 -   



버스 사고 A Bus Accident,

어렸을 때 소아마비가 있었지만, 그래도 의과대학에 진학할 꿈 많은 아이였는데, 1925년 그녀의 나이 18살 일 때, 자신이 타고 가던 버스가 마주 오던 전차와 충돌하며 너무나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몸을 관통한 쇠창살, 11개의 조각난 다리, 왼쪽 어깨와 오른발의 으깨어진 탈골, 골절된 쇄골과 3,4번 갈비뼈, 부서진 골반과 척추, 퍼즐 맞추듯 몸을 맞춰 겨우 가망 없다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루 종일 병원 침대에 누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딸을 위해 어머니는 특수 제작한 이젤을, 아버지는 유화물감을 그녀에게 주면서 그녀의 그림 인생이 시작된다. 평생 동안 따라다녔던 고통과 질병을 그림 예술로 표현하게 된다.



I am not sick, I am broken.
But I am happy to be alive as long as I can paint.  

나는 아프지 않아, 부러졌을  뿐이야.
그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어서 나는 행복해

-Frida Kahlo-



Frida painting in bed, anonymous photographer, 1940. © Frida Kahlo Museum


Without Hope 희망 없이, 1945, Frida Kahlo, Dolores Olmedo Collection, Mexico City, Mexico
The Broken Column (La Columna Rota) 부러진 기둥, 1944, Frida Kahlo, Museo Dolores Olmedo, Mexico

자신을 지탱하는 뼈 기둥이 산산히 부서져 보조기구의 도움으로 겨우 서 있고, 눈에서는 눈물이 뚝! 뚝! 떨어지고, 온 몸엔 바늘이 박혀 있어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고통이다.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928년, 그녀의 나이 21살에 이미 벽화 예술가였던 디에고 리베라를 파티에서 만난 프리다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 주면서 그녀 자신이 아티스트가 될 재능이 있는지 판단해 달라고 묻는다. 그녀의 작품에 인상을 받은 디에고는 최고의 화가가 될 거라고 말해 주면서 둘은 급속히 가까워져, 그때 이미 2명의 사실혼 아내가 있던 디에고와 1929년 프리다는 결혼하게 된다. 바람둥이 디에고는 프리다의 여동생까지 건들면서 프리다에게 고통을 안겨주다 1939년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1940년 12월, 그들은 다시 재결혼한다. 아, 프리다와 디에고…)


Frida Kahlo and Diego Rivera lived in the studio of sculptor Ralph Stackpole

Frida Kahlo and Diego Rivera lived in the studio of sculptor Ralph Stackpole, on Montgomery Street, San Francisco.  (Paul A. Juley/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Frieda and Diego Rivera, 1931, Frida Kahlo,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자화상 Self-Portraits,

프리다가 그린 작품의 총 수가 143점인데, 그중에 자신의 초상화가 55점이다. 대단히 높은 비율이 아닐 수 없다. 프리다 칼로는 왜 이렇게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것일까?

 


I paint myself because I am often alone and I am the subject I know best
나는 자주 혼자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그린다.    

- Frida Kahlo -  



사고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의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인 상태와 생각까지 자화상 작품에 표현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와 생각을 작품에 표현한 부분으로 인해,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 André Breton 은 프리다를 가리켜 초현실주의자(A Surrealist) 라 부르지만, 정작 프리다 본인은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They thought I was a Surrealist, but I wasn't.
I never painted dreams. I painted my own reality.

내가 초현실주의자라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결코 꿈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나의 현실을 그렸을 뿐이다.    

- Frida Kahlo -  



아, 작품 속의 표현들이 모두 그녀의 현실이라고 말하는 프리다, 안타깝다.

그녀의 말처럼, 모두 그녀의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다시 보니, 그녀의 현실과 생각, 그리고 표현력에 다시 한번 놀란다.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 짧은 머리의 자화상, 1940, Frida Kahlo, Museum of Modern Art


오른쪽 아래에 써진 년도 1940, 프리다가 디에고와 이혼한 1939년 직후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설명되는 작품이다. 이전의 여성스러운 드레스를 자주 입었던 프리다의 모습은 확 사라지고, 정장을 입은 남성적인 모습에 귀걸이 하나만 여성성을 남긴 자화상의 모습이다.


이제 자신의 ‘디에고의 여인’ 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홀로 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주위에 잘려져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들, 오른손에 한 움큼 쥐어져 있는 긴 머리카락, 왼손엔 혼자 이 많은 머리카락을 자른 듯한 가위, 주위엔 아무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 의자에 앉아 있고, 위에 멕시코의 유명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머리카락이었소. 이제 당신은 머리카락이 없으니,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Look, if I loved you it was because of your hair. Now that you are without hair, I don’t love you anymore.’ 디에고가 사랑했던 머리카락과 멕시코 전통의상을 벗어 던진 프리다, 프리다의 변신, 변화가 필요할 때 자르는 머리카락, 이건 초현실이 아니다. 현실이다.



Roots 뿌리, 1943 by Frida Kahlo

가슴을 열고 나온 나뭇잎 가지들은 그녀의 실핏줄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두번의 유산으로 결국 아이를 갖지 못한 프라다는 이렇게 새 생명을 주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새 생명을 주는 뿌리이고 싶었던 걸까? 바닥은 점점 갈라지고 있어 불안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은 2006년 5월, 뉴욕 소더비(Sotheby's in New York) 경매에서 약 62억 원($5,616,000)에 익명의 전화 입찰자에게 팔리는데, 그 사람이 팝스타 마돈나 Madonna 일거라 얘기한다. 프리다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마돈나로 알려져 있다.


The Two Fridas, 1939, Frida Kahlo,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디에고와 헤어진 직후 그린 ‘두 프리다’ 위 작품은, 서로 대조적인 프리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의 멕시코 전통의상인 티후아나 Tehuana 의상을 입고 있는 프리다와 왼쪽의 유럽의 현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프리다,  오른쪽의 파괴된 심장과 왼쪽의 살아 있는 심장, 두 심장이 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오른쪽의 프리다 손에는 디에고로 보이는 버튼이 들려 있고, 왼쪽의 프리다 손에는 핏줄을 자른 가위를 들고 있으며 피가 하얀 드레스 위로 뚝! 뚝!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두 프리다는 서로 손을 꼬옥 맞잡고 있다. 뒤의 요동치는 구름은 불안한 프리다의 마음을 보는 듯 하다. 디에고를 사랑했던 이전의 프리다와 이젠 그것을 끊고 다시 태어나고 싶은 프리다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Self-Portrait with Thorn Necklace and Hummingbird 가시목걸이를 한 자, 1940, Frida Kahlo, Harry Ransom Center


머리 위에는 나비와 잠자리가 몰려 들 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인데, 목 아래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찔릴 것 같은 가시덩굴 목걸이가 채워져 있다. 몇 번 찔려 피도 흘리고 있다. 원래는 꽃 위를 날아다니는 컬러풀한 아름다운 새인 허밍버드인 벌새는 그녀의 목에서 죽은 듯 검은색으로 가시를 물고 있다. 그녀가 키우고 있던 원숭이는 이러한 상황에 무심한 듯 손톱을 만지고 있고, 고양이는 잔뜩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심리상태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거울 Mirrors,

'프리다는 거울에 둘러 싸여 지내요' 프리다의 사진작가가 했던 얘기이다. 버스 사고 이후, 병원 침대 위에서만 지내야 했던 프리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많은 곳에 거울을 두게 된다. 옷장 앞, 화장대 옆, 야외 파티오 벽과 침대 바로 위 천장에도 아주 큰 거울을 배치하였다. 그래서 프리다에게 거울은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도구이다.


Lala Alvarez Bravo, ‘Frida Kahlo’, 1943, Courtesy of Throckmorton Fine Art, Inc © 1995 Center for Creative Photography, The University of Arizona Foundation



‘플랑-창과 나 Fulang-Chang and I’ 작품에서 보여지는 거울은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런 작품으로의 표출로 보인다.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이다. 프리다의 자화상 옆에 붙어 있는 거울 앞에 한 번 서 보자.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며, 나와 프리다가 함께 있는 자화상의 모습으로 바뀐다. 한 순간에, 내가 프리다 작품의 일부분이 되었다. 프리다 작품 속에 내가 있다. 너무 재미있다. 늘 이 작품 앞에서는 카메라를 꺼내 자신과 함께 액자 속에 있는 프리다의 모습을 담느라 셀카를 찍고 있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Fulang-Chang and I,

그림 속의 여인이 '나'라고 얘기하는 프리다로 보인다. 그녀의 특징 중에 하나인 일자 눈썹이 그녀임을 말해주고 있다. 여성의 이미지임에도 코 밑의 수염까지 표현한 게 새롭다. 언뜻 보기엔 프리다의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았는데, 앞에 검은원숭이 한 마리가 함께 있다. 이 원숭이의 이름이 플랑-창 Fulang-Chang, 자신이 데리고 있던 애완동물 중 하나이다.



이 플랑-창 원숭이는 프리다와 디에고 사이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태어나지 않은 프리다 아이의 모습을 이 원숭이에 투영하여 표현한 게 아닐까 해석하기도 한다. 라벤더 색깔의 리본이 프리다와 원숭이를 감싸고 있어 둘 사이의 친밀감을 보여주고 있다. 뒤에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식물의 털과 원숭이의 털, 프리다의 머리카락의 털이 모두 하나 됨을 보여준다.


그 당시 모마의 관장이었던 컹거(A. Conger Goodyear)가 너무나 좋아라 했던 작품이었는데, 프리다가 친구에게 이 작품을 주는 바람에, 프리다는 컹거를 위해 비슷한 자화상을 하나 더 그리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아래 그림인 ‘Self portrait with a monkey 원숭이와 자화상’ 이다.


Self portrait with a monkey, 1938, Frida Kahlo


Self portrait with a monkey, 1938, Frida Kahlo


Fridamania 프리다매니아,

우리는 왜 프리다에 열광하는 걸까? 그녀의 메이크업부터 패션까지 이미지를 따라 하는 사람들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 이러한 사람들을 프리다매니아라고 부른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작품에 함께 공감하고,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삶의 아픔을 그녀의 아픔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같은 아픔을 경험한 프리다가 주는 큰 위로에서 위안을 받는게 아닐까? 그녀가 어루만져 주는 위안을 오늘은 감사히 받고 싶다.

Fridamania




Frida | Official Trailer (HD), Mira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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