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Irises 아이리스
Saint-Rémy, France
1889
Oil on canvas
74.3 × 94.3 cm
1889년 5월 프랑스 생-레미의 생-폴 정신병원 Saint-Paul de Mausole 에서 그려진 이 작품의 첫 번째 소유자는 우리에게 ‘탕기 영감의 초상화’로 잘 알려져 있는 화방의 주인이자 아트 딜러였던 줄리앙 탕기 Julien Tanguy (Père)이다. 그 후 1892년 탕기는 반 고흐의 첫 번째 후원자 중 한 명이자 미술 평론가인 옥타브 미라보에게 300프랑(약 8만원)에 판다. 이 후로 약 9번의 매매가 이루어졌으며, 1987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호주의 금융가이자 기업 사기로 구속되기도 하였던 사업가 앨런 본드 Alan Bond 에게 5,390만 달러(약 647억 원, 현재 가치로 환산하여 약 1억 2880만 달러, 약 1,546억 원)에 판매되었으나 이후에 소더비가 본드에게 구매 가격의 약 절반인 2,700만 달러를 빌려주었고 본드가 나머지 구매 가격을 갚을 때까지 비공개 장소에 그림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작된 판매’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 후 1990년 3월 미술관 준비를 하고 있던 J. 폴 게티 뮤지엄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을 찾던 중에 소더비로부터 미공개 금액으로 이 작품을 인수하였고 하고, ‘19세기 가장 위대한 그림’을 컬렉션으로 소유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면서 이 작품의 주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게티 센터의 대표 작품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1888년 12월 23일, 아를에서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는 몇 달에 걸쳐 아를에서 두 번 입원을 하기도 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30여 명의 동네 사람들이 반 고흐를 추방해야 한다는 청원으로 집이 폐쇄되기도 하는 등 수모 끝에 1889년 5월 8일 아를에서 약 27km 정도 떨어져 있는 옆 동네인 생-레미에 있는 생-폴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한다. 생-폴 병원은 12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을 19세기에 정신병원으로 개조한 곳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삭막한 하얀색 건물의 정신병원 느낌보다는 조용한 수도원 느낌의 요양원이었던 곳으로 보인다. 증상이 호전되거나 약한 사람들에게는 자유시간도 많이 주워져 반 고흐가 그림 그리기에는 딱이었다. 반 고흐는 이곳 2층의 초라한 방에 머물렀으며, 바로 옆 방은 그림 그릴 스튜디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890년 5월 동생 테오의 권유로 정신과 의사인 가쉐 박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파리 근교인 오베르-수-와즈 Auvers-sur-Oise 로 옮기기 전까지 약 1년 동안 머무른 생-레미에서 반 고흐는 약 130여 점의 작품을 그린다. 대략 3일에 한 점 이상을 그려냈다는 것인데,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이 글 하나 쓰는데도 몇 날 며칠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대단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I feel happier here with my work than I could be outside.
By staying here a good long time, I shall have learned regular habits and in the long run the result will be more order in my life."
바깥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여기에서 내 작업을 하는데 더 행복감을 느낀다.
여기 오래 머물면서, 규칙적인 습관을 배울 것이고 길게는 내 인생에 더 많은 질서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빈센트 반 고흐-
위: 생-폴-드-무솔 수도원 The Monastery of Saint-Paul de Mausole at Saint-Rémy-de-Provence, Bouches-du-Rhône, France. From wikipidia.org
아래: 생-폴 정신병원의 빈센트 반 고흐의 방 Vincent van Gogh's room in Saint-Paul de Mausole From wikipidia.org
병원에 들어온 지 약 1주일 정도 지날 무렵, 어느 정도 이곳 생활도 익숙해지고 자신의 일상 패턴을 찾아가던 반 고흐는 다시 붓을 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자신의 미쳐가는 병을 막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림을 번개를 막아주는 피뢰침에 비유해 ‘내 병의 피뢰침 The lightning conductor for my illness’ 이라고 불렀다. 병원 앞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이리스 꽃들을 보며 반 고흐는 ‘이 척박하고 넓은 곳에 아름답게 자신을 꽃피운 저 아이리스처럼 나도 언젠가 내 인생의 꽃을 한 번 멋지게 피워 봐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병원에 들어와 그린 첫 작품이 ‘아이리스’ 가 된다. 이 작품을 일컬어 ‘반 고흐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묻어나는 작품’ 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아이리스를 그린 이후로 생-레미에서 보았던 많은 풍경들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반 고흐는 ‘아이리스’ 작품을 하나의 완성된 작품 그림보다는 연구용으로 그렸는데 동생 테오가 이 작품을 1889년 9월 3일 - 10월 4일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독립 살롱 전시회 Salon des Indépendants 에 출품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때 함께 출품하였던 작품이 잠 못 이루는 생-레미 새벽녘에 창가로 보이는 밤하늘에 무수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그려낸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화폭 안에 온전히 다 담기지 못할 만큼 풍성한 꽃들이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주위까지 꽃들이 만발한 느낌을 준다. 어느새 전시실 전체가 꽃밭이 된다. 차가운 보라색 꽃이 화면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따뜻함이 함께 전해지는 건 아래의 골드빛 나는 갈색 흙과 저 멀리 노란색 꽃이 함께 있어서 인 듯하다. 왼쪽 위에 하얀색 꽃 한 송이가 노란색과 보라색 경계에 놓여져 있다. 저 하얀색 꽃이 있고 없고가 이 그림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고 하니, 왼손으로 하얀색 꽃을 가리고 한 번 보고, 가리지 않고 한 번씩 보며 차이를 비교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확실히 흰 꽃이 주는 분위기의 전환이 있어 놀랍다. 그런데 그 흰 꽃이 힘이 없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저 하얀색 꽃을 혼자 고립되어 있는 반 고흐의 자화상으로 보기도 한다는데, 자신의 모습을 저렇게 하얀 한 송이 꽃으로 그려 넣은 걸까? 반 고흐라고 생각하니 더 외로워 보인다. 반대편 아래에 써 놓은 ‘빈센트 Vincent’ 라는 글씨가 하얀 꽃이 ‘나 빈센트야’ 라고 나지막이 뱉어놓은 말 같다.
꽃에 대한 묘사가 어마어마하다. 대단히 가까이서 클로즈업해서 꽃을 본 것으로 보인다. 꽃잎 한 잎 한 잎을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모두들 제각각 어느 하나 같은 꽃이 없다. 반 고흐 작품은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서 붓터치를 함께 느끼면서 관람해야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100여 년이 훨씬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붓칠을 했는지, 어느 방향으로 붓질을 해 나갔는지 한 땀 한 땀 느낄 수 있어, 좀 전에 붓을 툭~ 놓고 나간 반 고흐가 주위에 있을 듯하다. 반 고흐와 함께 같은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그림의 대표적인 붓터치 기법인 ‘반죽하다’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인 ‘임파스토 Impasto 기법’을 물씬 느낄 수 있다. 물감을 듬뿍, 듬뿍~ 오버스럽고 풍부하게 연출하여 3D 효과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물감을 아끼지 않고 푹~푹~ 쓰니 늘 가난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살아 있네’ 라는 말이 절로 새어 나온다.
전체적으로 저 멀리 하늘이 보이지 않고 땅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 살짝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다보며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또 그렇게 생각하면 화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아이리스 꽃들은 정면에 놓고 그린 것으로 보여 따로 노는 느낌이다. 다시점으로 그렸다고 보는 이유이다.
뿐 만 아니라,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라인 넣는 기법을 썼다는 것이다. 녹색의 잎에도 라인을 일일이 하나씩 그려 넣었고, 보라색 꽃에도 라인을 그려 넣었다. 이 라인 넣는 기법과 다시점으로 구성된 특징이 반 고흐가 일본의 풍속화인 우키요에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1850년대에 일본의 도자기를 감싸고 있는 포장지 등으로 유럽에 처음 들어오게 된 우키요에 うきよ-え 는 1856년 파리박람회에 정식 참가할 정도로 유럽에 자포니즘 Japonism 붐을 일으키게 된다. 이 당시 처음 접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원근법을 무시한 채 평면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주제는 평면적으로 크게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은 과감히 생략해 버리는 이전에 보지 못한 그림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또한 일상의 평범한 주제들, 대담한 윤곽선, 독특한 구도 자르기, 강조된 장식 패턴 등에 빠진다. 마네, 모네, 드가, 르느와르 등이 영향을 받았으며 포스터 그림의 대가 툴루즈 로트렉 또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 고흐 또한 심취하여 일본에 갈 계획까지 세웠는데 못 갔다고 하고, 우키요에 작품을 수집하고 따라 그린 게 무려 약 470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풍속화에 영향을 받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한 일본인의 애정은 상상 이상이며, ‘반 고흐 & 재팬 VAN GOGH & JAPAN’ 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회가 자주 열리기도 하고, ‘해바라기’ 등 많은 반 고흐 작품이 일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고 경매에서 일본인들이 반 고흐 작품을 많이 낙찰받아 간다.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화가 유럽에 못 넘어간 게 너무나 아쉽다.
왼쪽: 반 고흐 자화상 뒤에 걸려 있는 일본화.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1889, Courtauld Gallery, London
오른쪽: 일본화를 좋아했던 탕기 영감의 초상화 뒤의 일본화들. 빈센트 반 고흐, 탕기 영감의 초상 Portrait of Père Tanguy, 1887, Courtauld Gallery, Paris
반 고흐가 따라 그린 일본화 그림. 왼쪽: 빈센트 반 고흐, 꽃이 만발한 매화나무(히로시게) Flowering plum tree(after Hiroshige), 1887, Van Gogh Museum. 오른쪽: 빈센트 반 고흐, 몸 파는 여인(에이센) The Courtesan (after Eisen), 1887, Van Gogh Museum
반 고흐가 해바라기를 좋아하고 많이 그린 건 많이들 알고 있지만, 해바라기 못지않게 아이리스 작품 또한 많이 그렸다는 건 덜 알려진 사실이다. 생-레미에 오기 전인 1888년에 아를에서 그린 아이리스 작품인 ‘아이리스가 있는 아를 풍경 View of Arles with Irises in the Foreground’ 작품이 있고, 게티 센터의 꽃이 만발한 ‘아이리스’ 작품을 그리기 전에 하나의 아이리스를 그려보며 연구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보기도 하는 하나의 ‘아이리스 The Iris’ 작품이 있다. 또한 살짝 핑크빛이 도는 하얀색 배경 앞에 아이리스가 꽃병에 담겨 있는 정물화는 정말 반 고흐식 정물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이다. 또 하나, 생-레미에서 파리 근교인 오베르 수아즈로 떠나기 몇 주 전 정물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리스가 있는 정물화’ 작품이다. 반 고흐의 색이라 할 수 있는 노란색 배경에 노란색 꽃병과 노란색 바닥 위에 놓여진 보라색의 아이리스 정물화 작품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로 보색 컬러인 노란색과 보라색이 이렇게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수 있구나 싶다. 오늘은 반 고흐가 초대하는 보라색 가든에 푹 빠져 보자.
왼쪽: 빈센트 반 고흐, 아이리스가 있는 아를 풍경 View of Arles with Irises in the Foreground, May 1888, 54 x 65 cm, Oil on canvas, 반 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
오른쪽: 빈센트 반 고흐, 아이리스 The Iris, Saint-Rémy, May 1890, 62.2 x 48.3 cm, 캐나다 국립 갤러리 National Gallery of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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