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며(삶이 보이는 창 132호 발행인 글)
꾀많은 토끼처럼....
3년여의 혹독한 격리와 단절의 시간을 견디고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다시 좁혀지고 있습니다. 못 만났던 시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대면을 통한 일상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보복 소비 심리와 일맥상통하는 그리움의 폭발처럼 보이는 현상입니다. 아직 온전한 회복은 아니고 각종 변이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태이긴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는 인류에게 단절과 디지털 대전환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변화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인류 문명사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 쉽게 가늠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놀라운 변화의 계기가 되리라는 전망은 의견일치가 되는 것 같아요.
올해는 토끼의 해인데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고 합니다. 위험에 대비한 대안을 차선책, 차차선책까지 두 개 정도 더 준비한다는 것이니 대단한 방책인 것 같네요. 사람살이에서도 쉽지 않은 위험 대비인데 토끼의 지혜가 놀라울 뿐입니다. 꾀 많은 토끼의 해에 스스로 제발 지혜로와지기를 소망하며, 그동안 고민하던 세 가지 주제어가 전환, 혁신, 치유였으니 새해의 글머리를 여는 열쇠말로 삼고 싶습니다. 작년 여름호에서 최근 몇 해 동안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성찰하다가 뽑아낸 것이 전환, 혁신, 치유라고 말씀드렸어요. 개인과 사회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으며 세상의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했던 것 같아요. 사람살이의 기존 체제와 질서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으니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고, 전환을 위해서는 관성적인 세상의 운영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파괴적 혁신이 뒤따라야 하고, 팬데믹 과정에서 받은 극심했던 트라우마의 치유도 뒤따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성찰 없는 진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고 허둥지둥 댔는지 인과관계에 대한 본원적 성찰을 해야 제대로 된 향후 대책도 나오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묘책도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구성단위가 여하튼간에 전환과 혁신, 치유라는 3대 열쇠말을 가지고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를 둘러싸고 있거나 관계 맺고 있는 단위들에 대한 팬데믹 전후의 변화를 위한 분석과 전망에 적용해 보았을 때, 외람되지만 대단히 유용한 경험을 했습니다.
거시적 목표로서의 전환, 전환을 위해 도구로서의 혁신과 치유는 세 바퀴로 가는 삼륜 수레바퀴처럼 각종 사회 단위의 분석과 대책 수립을 위해 굴려볼 생각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새해를 맞으며 더 깊어진 겨울철에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요? 영민한 동물인 토끼의 지혜에 기대어 세 가지 성찰의 결과물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더해보면 어떨까요? 삶이 보이는 창을 통해 성찰하고 진보하는 분들이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하도록 변함없이 응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2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