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며(삶이 보이는 창 133호 발행인 글)
봄날
마스크를 내리고 대면을 하는 봄이 왔네요. 언 땅을 녹이는 따뜻한 봄기운을 동장군이 이제 더 이 상 버텨낼 수 없는 계절이네요. 잠시 더 머물 수는 있어도 대지의 봄기운을 이겨낼 재간이 없지요.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봄날이 주는 상큼한 매력입니다.
아직 코로나의 위험과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3년 만에 맞이한 대면 사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네요. 올해 현재까지의 국내 코로나 환자 사망자 추이로 환산했을 때 연간 1만 명이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이지요. 그만큼 두려움과 공포가 무디어지고 익숙해져서 일상으로의 복귀가 빨라졌다고 볼 수밖에 없겠지요.
고대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돌이 없어져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도구를 이용하는 인간의 기술이 발달하고 과도기적 상황을 거치면서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는 것이지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의 과학기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환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전염병 대응력과 함께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빼놓을 수 없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현재 과학기술의 혁신과 함께 맞이한 전환의 과정에서 미래를 향한 장밋빛 전망도 중요하지만, 전환 시대의 상흔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의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전염병 극복에 급급하던 시기에 제 고민의 과제로 혁신, 전환, 치유라는 말씀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코로나 시대의 극복과 평가, 대안을 고민할 때 3대 고민 과제는 거창한 인류의 미래만이 아니라 지역과 가족, 개인에게도 해당될 듯합니다. 기존 삶의 양태를 어떻게 혁신하고 체제를 전환하며 상처를 치유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있어야 합니다. 허둥댔던 과거를 평가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의 대안을 찾기 위한 분석의 틀과 절차의 하나로 유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삶의 주변에 혁신의 대상들, 전환의 과제들, 치유의 목마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역과 국가, 인류 전체로 보아도 얼마나 많이 눈에 띄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 해법을 실행하기 위한 재정과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지요. 세 가지를 비중과 순서를 조절해서 적절하게 실행할 수만 있다면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고 미래를 대비할 수도 있고 현재 발생한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뒷 강물이 앞 강물을 밀어내며 흐르듯이 말입니다. 역사적 진실은 은폐된 과거와 현재를 기어코 밝혀내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웁니다. 다만 고통스러운 희생과 피눈물 나는 인내가 필요할 뿐이지요. 인류에 저지른 끔찍한 범죄행위로 보면 나치 독일과 일본의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행위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범죄의 시간에 득의양양했던 반인륜적 공범들은 역사의 강물에 떠내려갔습니다. 다만 그들의 후예들이 만행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피해자들이 용서할 때까지 끝없이 반복하는 독일과 교묘한 수사와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일본의 행태는 온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혁신과 전환,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독일과 철저히 왜곡하고 외면하는 일본에 대한 인류사의 평가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국가들이 이웃 국가들과 공존공영하는 역사의 봄날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을 몰아내기 위해 따뜻한 봄볕의 화해가 우선되고 언 땅이 조금씩 녹는 과정이 선결 요건임을 역사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로 인해 거창한 주제에 혁신, 전환, 치유를 한 번 대입해 보았습니다. 역사의 봄날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지혜가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사례는 지역과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물이 생동하고 꽃피는 봄날은 간절히 소망하고 준비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누리에 진정한 봄기운이 가득하기를 소망하며, 역사와 세상을 따뜻하지만 곰곰이 살피기 위해 삶이 보이는 창을 활짝 열도록 하겠습니다.
발행인 이호동 (202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