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창을 열며(삶이 보이는 창 131호 발행인 글)

by 이호동

시작과 끝


계절의 순환 과정은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여름인가 했더니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고, 금방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며, 어느새 봄눈이 녹고 새싹이 돋아납니다. 다만 그 시기와 종기를 명확하게 가르지 못할 뿐 계절만이 아니라 매사에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쯤은 인류의 경험에 녹아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결실과 낙엽의 오묘한 계절 가을입니다.

인간을 감사와 겸손으로 깊어지게 하고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가을입니다.

그린비네의 4계절을 기준으로 보면 가을은 추수와 매듭에 대해 사색하게 하는 계절입니다. 봄에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여러 씨를 뿌리고 나면 반가운 싹이 트지만 원치 않는 수많은 풀들도 각자의 기세를 뽐내며 자랍니다. 그 생명력이 하늘을 찌릅니다. 여름은 온통 풀밭입니다. 알면 약초 모르면 잡초라지만 각자의 존재 이유를 인간이 다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그 수많은 생명체들이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살다가 가을이 되면 결실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합니다. 무성하던 풀들도 고개를 숙이고, 남한강의 비내섬 억새도 아름다운 향연을 벌이지만 깊어가는 가을에는 떠날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한 번의 오고 감을 통해 인간에게는 계절의 변화를 신선하게 선물하며 시작에 대한 매듭을 알립니다.

세상 만물은 그리스 문자의 알파와 오메가처럼 시작과 끝이 존재합니다. 그 가르침을 깊이 일깨우는 계절 가을입니다. 유한한 삶을 살다가 떠나는 존재인 인간에게 매년 보여주는 자연의 시작과 끝은 성찰과 사색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이 계절은 팬데믹으로 세상을 들끓게 하고 인간의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와 원치 않는 만남을 이어온 세 번째의 가을입니다. 코로나로 고생한 3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있네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차단과 고립의 힘겨운 시간이었어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많고 고통당했던 분들도 적지 않지만 이제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크게 쉴 수 있으니 그나마 한결 낫네요. 코로나로 인한 고통의 끝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시작은 코로나가 했지만 끝은 인간이 이룩한 과학과 집단지성이 매듭짓기를 바랄 뿐입니다.

코로나 시대는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재앙의 시기입니다. 인간이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생태계 질서를 흔들고 무너뜨린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기간입니다. 대자연 앞에 인간이 철저히 겸손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네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유지하고 파멸의 끝을 맞지 않기 위해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재앙적인 역병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쟁이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으니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충돌과 격변의 시기는 끝날 줄을 모르네요. 역병과 전쟁은 원치 않는 만남의 시작이지만 인간 세계를 한층 더 진일보하게 매듭짓는 것이 현존 인류에게 과제로 주어졌습니다. 인류가 맞닥뜨린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전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선 내 삶의 주변에서부터 자연과 함께 그 변화를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보이는 창은 인간과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 삶을 응원하며 항상 열려 있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 하늘이 높고 소슬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

발행인 이호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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