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는 7남매의 막내이자 늦둥이 장난꾸러기를 향해 어쩌다 한번씩 한숨을 토해내듯 말씀하셨다. "나중에 꼭 니같은 놈 키우거래이". 나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기도 했지만 태생적인 장난끼는 집성촌 마을의 또래 10여명과 함께 조용할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런 말씀을 듣고도 씩 웃거나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것 같다.
소방관이 TV에 나온 날 안산에 동네 동생들을 일렬로 세우고 솔가지를 쥐게 한 후 불끄기 연습을 했다. 인원이 많다보니 금방 불을 끄게 되고 재미가 없어졌다. 결국 솔가지를 들고 달려가 불을 끄는 신호인 "돌격 앞으로!"를 최대한 늦게 외치면서 재미를 배가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람이 확 불어와 안산에 불이 번지고 "후퇴!"를 외친 그날. 안산만 태운 것이 아니고 꼬맹이들과 그 어머니들의 가슴을 새카맣게 만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할머니가 애들 혼내지 말라고 사고뭉치들의 어머니들에게 지혜로운 주의를 주면서 이례적으로 혼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크게 놀란 아이들을 혼내면 애들 잘못된다고 하셨다니....심지어 그 이튿날 명절 때나 먹는 떡을 얻어먹었던 기억. 세월이 수십년 흐르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지도 2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늘 가슴 한켠에 남아 가슴을 치는 부분이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렇게 꾸러기로 자랐을까. 하지만 돌이킬 수없는 문제이니 어머니께 죄스러운 부분만 빼면 여전히 미소가 입가에 맴도는 추억이다.
그렇게 놀기 바쁘니 방학 때 일기쓰기 숙제는 열흘 이상씩 몰아치기를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몰아치기 일기를 쓰고 나면 다음 방학부터는 매일쓰겠다는 반성적 성찰도 했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까지 생기곤 했으니....철이 들기는 멀었던 시절.
엊그제 페북에 있는 '페이스북에서 함께한 순간' 을 통해 10년 전 딸의 사진이 올라왔다. 바라만 보아도 흐뭇한 뒷모습이 영락없는 외동딸, 달링이었다. 다만 엎드려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모습과 함께 글의 제목이 '[경악 또는 경이] 달링, 9일치 일기를 폭풍집필하다'였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경험하는 추억의 한장면이기도 하다.
'효녀딸이 되었으면 좋겠고, 아빠는 술을 많이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부녀에 대해 각각 문제점을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결의가 담긴 내용이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예쁜 딸이지만 이 녀석때문에 몹씨 속이 상할 때 나도 모르게 '나중에 꼭 너같은 놈 키우거라'하셨던 어머니 말씀을 내뱉곤 했다. 이런....
다만 내 어린 시절의 반응이 씩 웃거나 비켜가기 등이었다면, 이 녀석은 오히려 당당해서 기가 막히게 만들곤 했다.
"아빠! 받아들여".
어머니는 자랑거리였던 막내 아들이 한번씩 경악하게 만들었을 때 어땠을까? 이젠 알 길이 없다.
다만 경위는 연결이 안되지만 한번씩 하셨던 말씀이 "옛말에 안보면 보고 싶고 보면 이갈린다는 말이 있니라"이고 보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딸의 10년 전 사진을 통해 그리운 어머니 생각과 "아빠! 받아들여"가 겹치면서 아련한 추억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