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년 자연인이다.

by 이호동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추억돋는 프로그램을 즐겨보곤 한다. 고달픈 세파에 찌든 삶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중년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동시대를 살아온 이름모를 벗들의 로망이라면 빠질 수 없는 동기부여이니.세상과 전혀 반대로 가서 손해가 예정되어 있더라도 광야에 홀로 선 선지자처럼 이름하여 ‘독고다이’정신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자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회자되고 세상살이 고달프다며 주변에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실천하지도 못할 지인들이 현실도피성 유토피아를 설계할 때 내 정체를 거침없이고백한다. “꿈깨라, 나는 소년 자연인 출신이다”. 대신 몹쓸병에 걸리거나 도시에서 재기 불능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안타까운 그들의 마지막 도전에 대해 술자리의 말안주처럼 희화화할 수는 없는 문제니까. 대신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과 순기능들에 대해 개인 체험과 나는 자연인이다를 줄기차게 본 사람으로서의 느낌을 솔직하게 나눈다. 기적처럼 중병에서 회복되고, 마음과 몸을 많이 상한 도시인의 재기는 자연 치유를 통해 가능하니까.


나에게 ‘소년 자연인’의 삶이 시작된 것은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600년 집성촌 인근의 큰 저수지 옆 외딴집으로 이사하면서 시작되었다. 일제 시대에 온가족이 만주로 갔다가 해방후 귀국하면서 대식구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소신강한 아버님이 이승만대통령 시절 농지개혁으로 유상분배된 땅조차 거부하시면서 삶은 더욱 팍팍해졌고. 입에 풀칠하며 굶어죽지 않고 버티는 지경이었다. 만주가서 고생했다며 문중 어른들이 선친을 수리조합의 저수지 관리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해줘서 형제들 중 막내가 차출되어 그 모진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척박하고 고립된 곳에서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 7년 정도를 살았다. 마을에서는 2km가량 떨어지고 물과 산으로 에워싸인 초가집이었다. 저수지와 비가 오면 큰물이 흐르는 개천이 좌우에 있었다. 집 뒤편은 산이며 유일하게 초가집 앞으로 큰 밭이 있었다. 밭둑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솔길이 나오고거기서 한참을 걸어야 도로가 나오는 고립된 곳이었다.큰비가 내리고 온 세상이 물천지가 되면 몇 날 며칠을 고립된 상태에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집 근처 개천의 웅덩이에 작은 돌을 쌓아서 우물을 만들고, 호롱불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 나중에 숙제하는 나를 위해 부모님이 비싼 석유 초롱을 구해오셨을 때는 신천지 발견이었다. 전기와 상수도는 태어나서 본 적이 없으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밤에는 부엉이가 울어대고 산짐승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곳. 겨울철 저수지의얼음 갈라지는 소리는 쩡 쩌저쩡하면서 자장가로 들리는 곳. 혹독한 추위에 손과 발은 터서 피가 나기 일쑤. 긴긴 겨울은 집에서 키우는 개,소,닭이 얼어죽지 않게 보살피는 것이 유일한 놀이나 고된 노동처럼 느껴졌다.


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겨울과 이른 봄, 장마철 여름을 제외하면 1년의 절반 정도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들이 곳곳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온갖 새들이 활기를 찾고 노래 부르듯이 지저귀는 생동감이 좋았다. 여름이면 전용 풀장을 가지고 있었으니, 방에 옷을 홀라당 벗고 곧바로 달려가 맑은 저수지에 첨벙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 지금은 장당지로 불리지만 옛날 둑이 터진 적이 있어서 ‘터진 못’이라고 불리는 저수지는 소년 자연인에게 태평양처럼 넓고 깊게 느껴졌다. 다만 부모님은 여름에 물에 빠져 죽거나, 겨울철에 얼음이 깨져서 못나올까봐 늘 깊은 곳에 못들어가게 하시느라 실랑이가 이어졌다. 가을이면 독이 오른 뱀을 피하는 것 빼고는 온갖 먹거리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산과 밭이 학교에 있는 소년 자연인의 심장을 뛰게 했다.


소년 자연인 시절의 자연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거나 위험이 도사린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자연 앞에 겸손하지 않으면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일찍 깨닫게 해준 시절이었다. 견디는 동안은 늘 탈출을 꿈꾸던 곳. 떠난 후에는 늘 그리운 곳. 어릴 적 자연인 시절은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기도 하고 힘들었던 고통 극복의 단련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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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DsQPeNkWWI


사진은 낚시하시는 분들이 최근에 공유한 장당지 모습입니다. 옛 모습이 조금은 남아있지만 주변이 많이 개발되었네요.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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